[다산칼럼] 내수진작엔 역부족인 금리인하
한국은행이 9일 전격적으로 금리를 연 1.5%에서 연 1.25%로 25bp(1bp는 0.01%) 인하했다. 한은은 이번 금리가 글로벌 교역 부진과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하반기 하방리스크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고용지표 부진으로 당분간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고려한 듯싶다. 한은의 선제적 대응은 높이 살 만하다. 과거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에 뒤따라 보조적으로 통화완화 정책을 가져간 것과는 달리 선제적으로 통화 정책을 가져간 것은 한은의 위상을 제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은은 전날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에 10조원을 출연한다고 했다. 한은이 기업은행에 대출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펀드를 통해 수출입은행 및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코코본드를 자본확충펀드가 매입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출자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은은 수량변수인 자본확충펀드 대출과 가격변수인 금리 인하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통화완화 정책을 추구하게 됐다.

전체적으로 해석하면 자본확충펀드 대출은 해운·조선이라는 특정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춘 차별적 통화완화 정책이고, 금리 인하는 비(非)차별적이고 보편적인 통화완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금리 인하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경기하방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인 경기부양책인 것이다.

그런데 두 정책의 효과는 차이가 있다. 자본확충펀드 대출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구조조정 대상 산업에서 시중에 흘러들어가 유동성을 일정 부분 증가시킬 것이다. 따라서 부분적이긴 하지만 경기부양효과가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 목적 아래 특정 산업에 특정 목적으로 자금이 투입되는 장점이 있다. 부작용은 ‘인플레이션 세금’과 한은의 손실 가능성이다.

반면 금리 인하는 시중의 유동성을 높이는 전형적인 경기부양책이다. 이 역시 부작용이 있다. 한국 경제 상황에서는 해외 자본 유출, 가계부채 증가와 전셋값 폭등, 은행과 보험회사의 수익 악화 및 역시 인플레이션 세금을 들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현재와 같이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일단 논외로 하자. 아직 주요국과의 금리 차이를 고려하면 단기채권에서 해외 투자가 일부 유출될 가능성은 있지만 해외 국부펀드나 중앙은행이 투자하는 중장기 채권에 대한 영향력은 크지 않다. 문제는 금리 인하를 통해 하반기 경기하방위험을 얼마만큼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수출과 설비투자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내수가 어느 정도 버텨주고 있지만 추세적 회복세라고는 말할 수 없다. 금리를 내려도 수출과 설비투자 부분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수출은 글로벌 교역량 증가가 전제조건이고 점점 보호무역주의 장벽이 높아지기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하다. 설비투자 역시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차원에서 망설이는 것이지 자금조달비용이 높아서가 아니다.

결국 금리 인하는 가계대출 증가를 통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금융위원회가 작년 이후 안심전환대출과 대출자격조건을 엄격히 하는 미시적 정책으로 맞대응하고 있지만 금리 인하라는 파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가계부채가 늘어날수록 결국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가 늘어나면서 소비는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 더불어 이미 작년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됐다. 이들은 연령별 자산 보유에서 가장 순자산 가치가 높은 세대이지만 대부분 이자로 생활하고 있다. 물론 금융위가 주택연금을 통해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금리 인하는 궁극적으로 이들의 소비 성향을 감소시킬 것이다. 전체적으로 판단하면 금리 인하가 내수를 진작시킨다고 확신할 수 없다. 즉, 전형적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미국 금리 인상에 앞서 ‘버퍼(완충장치)’를 확보하는 차원이라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과감하게 50bp를 인하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