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가업승계의 ‘KEY’ 후계자 교육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당태종(唐太宗)의 신하인 위징(魏徵)이 한 말로 여기서 창업이란 나라를 처음 세우거나 사업을 처음 시작한다는 말이고, 수성은 이뤄 놓은 것을 그대로 지켜나간다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은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의미다.

필자는 가업승계를 진행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창업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30~40년 가까이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제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다. 대부분 소위 ‘헝그리 정신’이라고 불리는 배고픔을 의지로 극복하며 회사를 일구었고, 이제 경제적인 풍족함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안정된 상태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들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상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특별한 노력이 없다면 쇠퇴기로 접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려면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철저한 계획, 그것을 실현할 조직, 그리고 그들의 경영철학과 이념을 지키며 이어가겠다는 능력 있고 믿을 만한 후계자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창업자는 얼마나 될까. 실제 생각보다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중소 제조업체의 창업자인 최 사장은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 10시간 이상 40~50대 시절만큼 왕성하게 일을 한다. 주변에서는 “그 연세에 대단하십니다”라고 추켜세우지만, 막상 그는 자신을 이을 후계자가 없어 은퇴를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자녀가 없어서가 아니다.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딸은 전업주부이고, 큰아들은 의사이어서 기업경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성공적 승계 위한 후계자 교육 프로세스
또 다른 한 창업자는 지난 10년간 경영 수업을 받던 자녀가 자신과의 갈등으로 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떠나 후계자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5년 가까이 경영 수업을 받던 후계자를 태도와 자질이 미흡하다고 회사에서 내보낸 창업자도 있다. 성공적으로 기업을 일군 창업자들도 은퇴를 앞두고 승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창업자에서 2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70%가 실패를 한다. 70%의 기업이 창업자의 사망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업이수성난’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대교체 성공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후계자 문제다.

효과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필요한 적정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2010년 우리나라 중소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대부분 2~5년 정도로 그 기간을 짧게 인식했다. 그런 탓에 열에 아홉은 승계 계획을 너무 늦게 짜기 시작한다.

랜스버그 박사는 “승계는 단순히 횃불을 넘기면 되는 일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노스웨스턴대 가족연구소의 존 워드 박사 또한 “승계는 10~2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간의 프로세스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후계자 개발은 다음과 같이 4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후계자 교육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시작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듯 어린 시절 경험은 성인이 됐을 때 의사결정 및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의 일에 대한 태도나 습관, 가치관, 사람들과의 관계 등은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나 양육 방식, 부모와의 경험 등은 자녀가 경영자가 됐을 때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가업승계는 유아기 자녀들이 성인들의 행동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돼 일생 동안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필자가 만난 한 창업자는 자녀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자녀의 방학 때 해외 출장 스케줄이 있으면, 자녀들과 동행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바빠서 자녀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그는 출장길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나 호텔에서 함께 지내며 부족했던 대화도 나누고, 자녀들의 꿈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자신의 비즈니스 철학이나 회사를 운영하면서 느꼈던 보람 등도 얘기해주며 자녀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녀들에게 직접적으로 승계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았지만, 아들 둘 다 해외 유학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회사에 들어와 성공적으로 후계 수업을 받고 있다.

반면, 다른 한 경영자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기업의 생존이 시급한 시기로, 밤낮 구별 없이 주말까지도 회사 일에 매달리던 시기라 자녀들과 함께할 시간을 전혀 없었다고 했다. 사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그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외아들이 성장하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눈 밖에 나는 일이 있으면 강하게 키우겠다는 명분으로 아들을 무섭게 야단쳤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강한 성격에 눌려 자신감을 잃었고, 이런 상황은 후계자가 된 지금도 회사에서까지 반복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순한 양이지만, 회사 밖 술자리에서는 언어폭력이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자주 보인다. 이처럼 아들이 어려서 아버지에게 받은 무시와 가혹함은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성인이 됐을 때 조직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조직원들을 갖은 핑계로 무시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성향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녀의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는 개인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후계자가 된 후 회사 운영에까지 직접인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어린 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맺은 자녀들은 실제로 외부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음에도 기꺼이 기업을 계승해 헌신하는 자녀들이 더 많다. 그러므로 오너 경영자는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승계를 염두에 두고 경영을 해야 한다. 꼭 승계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자녀와 어린 시절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고 대화하며 부모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자녀의 정서적 발달과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2단계 회사 안팎에서 실무 경험을 쌓게 하라
본격적인 후계자 훈련은 보통 자녀가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기가 되면 후계자는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중반에 이른다. 이때 회사에서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먼저 회사 밖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후계자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 회사 밖에서 일을 시작하면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울 수 있어 나중에 경영자가 됐을 때 직원들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만약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기업에서 일할 기회를 갖는다면 후계자는 다양한 관리 시스템을 배우고 가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나중에 자신의 기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통찰력을 기르는 기회가 된다.

어느 측면으로든, 회사 밖에서의 경험은 후계자에게 필수 과정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 경력이 바람직할까.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 또는 최소 한 번 이상 승진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

반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외부에서의 경험 없이 바로 가족기업에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많다. 그러면 만약 해외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고 하더라도 직원처럼 기본적인 실무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떤 회사는 각 부서를 일정 기간 순환근무를 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고, 제조업의 경우 1~2년간 공장에서 직접 근무를 하도록 하는 회사도 있다. 16년간 후계 수업을 받고 몇 년 전 승계를 끝낸 한 중소기업의 2세 경영자는 처음 몇 년간 자재구매부에 근무를 하며 제조 현장과 긴밀하게 일을 했고, 그 이후는 영업부를 맡아 일하면서 항상 고객들을 만나 고객들의 요구나 자주 물어보는 질문들, 사후관리 등을 통해 자신의 제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제조 현장과 긴밀하게 협조해 품질 향상과 연구·개발(R&D)에 반영해 비즈니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후계자가 제조 현장이나 제품에 대해 창업자만큼 알지 못한다면 회사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현장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했다. 후계자 교육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 직접 아들을 가르치게 되면 강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띄어 나쁜 감정이 앞서고 아들 앞에서 화를 자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자도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지 않고 아들을 위해 사람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도 아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들에게 멘토나 코치 등을 붙여서 리더십을 확장할 기회는 만들어주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회사와 후계자를 잘 아는 다른 회사의 성공한 경영자를 멘토로 둔다면 그들로부터 이상적인 사장의 모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3단계 기업가형 리더십을 개발하라
기본적인 실무를 익히고 나면, 그다음은 후계자가 리더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계발할 차례다. 이때가 되면 후계자는 대부분 30대 중반을 넘어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고 창업자는 60~70대 정도가 된다. 후계자들은 이미 일정 기간 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회사의 이러저러한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제 중간관리자로서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방법이나 재무·관리 시스템, 인사 시스템 등 경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과 대인관계나 의사소통의 방법 등 리더십에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외부 모임이나 세미나 등에 참석해 사업 외의 유용한 기술을 배우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재하고 네트워크를 넓히는 일도 장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중간관리자를 거쳐 최고경영자(CEO)에 이른 사람들에게는 2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관리자형 경영자이고, 둘째는 기업가형 경영자다. 관리자형 경영자는 경영의 효율 및 수익성 향상, 업적 향상에 대해 특히 관심이 강하며 이러한 측면에서는 리더십을 잘 발휘하지만, 이념이나 비전 제시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시기 후계자는 관리자로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기업가형 경영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관리자는 교육을 통해 양성할 수 있다. 하지만 후계자를 기업가형 경영자로 키우는 것은 창업자의 선택의 문제다.

후계자를 기업가형 경영자로 성장시키려면 창업자가 지난 시절 해 왔던 것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일이든 책임을 갖고 직접 부딪쳐 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후계자가 실수와 실패를 하더라도 이를 패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값진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키우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만일 창업자가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아무것도 전적으로 맡기지 못한다면 후계자는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리형 경영자에 머물러 있게 된다.

한 창업자는 자신이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 의도적으로 후계자가 크고 작은 일들을 직접 맡아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도록 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위기를 조장하고 후계자의 능력 이상의 것을 맡겨보기도 했다. 후계자가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아들에게 승계를 하고 은퇴를 했지만 아들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승계 이후 제2의 도약기를 이끌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통해 배운다. 실수나 실패를 비난한다면 후계자는 도전을 두려워하고 의존적이 되기 때문에 리더로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잃게 된다.

4단계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하라
가족기업 전문가들은 가업승계를 릴레이 경주에 비유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경주에서 이기려면 바통을 제대로 주고받아야 한다. 만일 어설프게 쥐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승리는 물 건너간 것.

이와 마찬가지로 가업승계에서도 경영자와 후계자 간에 바통을 넘기는 기술이 필요하다. 즉 후계자가 일정 기간 후계 수업을 받고 리더로서 역량을 갖추게 되면, 그때는 경영자의 권한과 책임을 후계자에게 건네주는 단계적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전 단계까지 승계가 원활하게 진행됐음에도 이 단계에서 바통을 떨어뜨리거나 넘기지 않고 계속 쥐고 있는 실수를 종종 범한다. 창업자가 지속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권 이전 단계에서 많은 기업들이 창업자와 후계자 간 갈등을 겪는다. 어떤 기업에서는 후계자가 사장이 됐는데도 아버지가 권력을 이양하지 않자 급기야 후계자가 사표를 내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만류했고, 결국 아버지가 회사를 떠나는 조건으로 아들이 다시 회사를 맡아 경영하고 있다.

이 시기 세대 갈등으로 관계가 악화되면 직원들도 둘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면 비즈니스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얼마 전 벌어진 롯데가(家)의 분쟁에서 보듯이 심지어 90세가 넘은 창업자가 60대가 넘은 후계자들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못해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가업승계에 성공한 후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그들이 사장이 됐을 때 부친이 자신들에게 회사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겨 놓았던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는 것. 한 후계자는 부친이 신뢰를 보이고 간섭하지 않으니 책임감이나 부담이 커지고, 스스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책도 많이 보고, 어디든 배울 기회가 있다면 달려가는 등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결국 부친의 신뢰와 전적인 경영권 이전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승계를 위해서 후계자가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시점이 되면 창업자는 과감히 권한을 이전해야 한다.

가업승계를 계획하는 창업자에게 있어 후계자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잘 준비시키는 것보다 더 큰 도전 과제는 없다. 만약 은퇴 전에 올바른 방법으로 후계자의 리더십을 개발한다면 창업자가 퇴장할 때 후계자는 박수를 받으며 등장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창업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은퇴를 해야 되고, 그러한 불안감은 임직원들도 똑같이 느끼게 될 것이며 기업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결국 미래의 조직을 이끌어 갈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후계자다. 좋든 싫든 미래의 어떤 시점에 기업에 자신은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