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안을 다룬 청와대 서별관회의(경제현안회의)에서 정부 측 참석자들은 막무가내로 산업은행을 압박했다.”

정치권과 정부에서 대우조선과 STX조선 부실의 책임을 산업은행에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 산업은행 전 고위 관계자는 3일 “구조조정 실패의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고 정면 반박하며 이같이 말했다. 야당 일각에서 기업 구조조정 실패를 따지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과 맞물려 파장이 예상된다.

현 정부 들어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업무에 깊숙이 관여한 이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기업 구조조정 실패의 책임이 산은에 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STX조선 등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은 실권(實權)이 전혀 없었다”며 “산은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은 책임론은 지난달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서 잇달아 나왔다. 산업은행이 최근 3년간 대우조선과 STX조선 구조조정을 주도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자금 지원으로 부실을 키웠다는 것이다. 산은 등 채권은행들은 지난해 10월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 지난해 12월 STX조선에 4530억원을 추가 지원했지만 6개월 만에 대우조선은 선박 ‘수주절벽’에 직면했고 STX조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산은이 대우조선을 추가 지원한 건 정부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갔더니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는 쪽으로)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며 “지원 금액까지 다 정해놓고 무조건 따르라고 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전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및 STX조선해양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과 관련, “당시 정부 쪽에서 작성한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방안은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최대 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를 지원해야 하는지 이미 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양측의 최종 지원 금액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조정으로 결정됐다”며 당시 청와대 서별관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우조선과 STX조선에 자금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산은 회장이 정부에 ‘면책권’을 요구했다는 데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전했다. 그는 “STX조선 자금 지원과 관련해 면책권을 요구했다는 것은 완전히 와전된 것”이라며 “면책권을 요구한 것은 STX조선이 아니라 STX팬오션 처리 때였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 4월 열린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정부 측 인사들은 산은에 STX팬오션을 떠안으라고 종용했다. 당시 회의에는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김진수 금감원 기업구조개선국장이 참석했다.

그는 “서별관회의에서 정부 측 참석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돌아가면서 산은이 STX팬오션을 떠안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측 참석자들은 일제강점기 순사(경찰관)와 같은 분위기로 압박했다”며 “일부 참석자는 정부에서 결정하면 산은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대놓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당시 정부 측 압박에 대해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STX팬오션을 떠안으면 1조5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볼 것’이라는 점을 들어 추가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산은에 넘기려면 정부에서 면책권과 손실 보전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STX조선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STX조선은 2013년 4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신청했다. 산은은 이후 수차례에 걸쳐 STX조선과 나머지 STX그룹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산은이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STX조선에 대한 구조조정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그런 비판은 자율협약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자율협약은 채권단이 100% 동의해야만 의사결정이 가능한데, 산은의 당시 지분율은 30% 초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산은은 다른 시중은행을 강제할 힘이 전혀 없다”며 “STX조선에 대한 결정은 늘 정부에서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문제에서 가장 간섭이 심했던 곳은 금감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013년 9월께 금감원 고위 관계자가 밤중에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산은이 동양증권을 맡아줘야겠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선·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도 잘못한 게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당시로선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후적으로 보면 잘못된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하지만 “책임 소재를 가리고자 한다면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