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자율협약은 밀실협약…정보 공개해야"
채권단 자율협약 제도를 전면 개편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적인 제도로 흡수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조조정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불투명한 의사 결정으로 돈만 낭비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건설, 조선 등 수주산업에서는 자율협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해외 채권자들은 법에 근거한 구조조정 절차가 진행되면 파산 선언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 보증 이행을 요구하거나 채권 회수에 나서 기업회생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율협약 과정에 벌어지는 정부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자율협약 체결 이후 해당 기업에 관한 의사결정이 정부·국책은행과 기업 지배주주만의 협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절차가 불투명해지고 책임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민간 채권은행이 기업회생 여부는 고민하지 않고 채권 회수에만 몰두하는 현상도 일어난다. 이를 막기 위해 구조조정 계획과 진행 상황, 자금 지원 등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근거 법률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주기적으로 구조조정 경과와 성과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부실에 책임이 있는 경영자는 상황이 심각해진 다음에야 자율협약 등을 신청한다”며 “채권단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채권단 중 일부가 채무조정 등에 반대해 절차를 지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협상이 어려우면 다음 단계로 신속하게 넘어가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했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선 주식회사 공시 제도와 회계감사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지수 미국 변호사(전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는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공시제도가 허술하고 외부감사인에 의한 회계감사의 신뢰성도 낮아 대부분 대형 부실기업에서 분식회계 문제가 발견된다”며 “관련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는 업계별 전문가를 양성해 기업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