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으로 회사채 투자자의 손실 위험이 커지면서 신용평가회사의 ‘뒷북’ 신용등급 평가가 도마에 올랐다. 2010년부터 조선·해운업 위기설이 불거졌는데도 신용평가사들이 경기 변동 방어능력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조선·해운사가 발행한 회사채에 A급 이상의 우량 신용등급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 사이에선 신용평가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선·해운도 뒷북 신용평가…투자자 피해 '눈덩이'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영난으로 이날 3조원 규모의 수정 자구안을 마련한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은 2014년 11월까지 AA-였다. AA-는 AAA~D 등 총 20개로 구분되는 신용등급 체계에서 상위 네 번째에 해당하는 우량한 신용등급이다.

하지만 글로벌 조선산업은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전후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2012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저가 수주로 인해 수익성이 눈에 띄게 악화했다. 운전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2010년 말 2조원에 못 미쳤던 순차입금이 2014년 상반기 6조600억원으로 대폭 뛴 상태였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수주 경쟁력을 갖춘 데다 조선 경기 변동성에 대한 대응력이 우수하다”며 신용등급 AA-를 유지했다. 이런 우수한 신용등급 덕분에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상반기에만 회사채 5000억원어치를 발행할 수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상태가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서도 신용평가사는 작년 7월 이전까지 A급 이상의 신용등급을 매겼다.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이 BBB급으로 떨어진 건 해양플랜트 부실이 공개되고 대규모 영업 적자가 발표된 뒤였다. 지난해 말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약정을 체결한 이후에야 투자부적격등급(BB+이하)으로 내렸다.

현대상선의 신용등급 조정 과정도 다르지 않다. 2013년 초부터 현대상선은 이미 일반 회사채 발행과 거래가 실종된 상태였다. 2012년 월평균 1000억원을 넘었던 기관투자가 시장(장외시장) 거래량은 2013년 월평균 4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채권을 헐값에 내놔도 사겠다는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개인 투자자가 소액으로 거래하는 장내시장 채권가격도 하락세(회사채 유통금리 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2014년 3월에야 처음으로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등급으로 낮췄다.

자율협약 중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회사채 가운데 개인 투자자가 보유한 금액은 2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지난해 말 기준)도 2조원을 웃돌아 개인 투자자의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리스크담당 임원은 “채권 유통과 주식시장은 투자해선 안 되는 기업이라는 경고음을 냈지만 신용평가회사는 이를 외면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와 관련, “경기 순환이나 금융시장 급변에 휘둘리지 않고 신용등급을 매겨야 하는 신용평가사 특성상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미래를 예측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신용등급을 늦게 내렸다는 비판은 결과론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김은정/이태호/하헌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