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까지만 해도 미세하게 개선 흐름을 보이던 경기 지표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작년 말과 올초 정부의 소비진작책 등에 힘입어 늘어나던 산업생산이 4월에 석 달 만에 다시 꺾였다. 소비심리는 일부 살아 있지만 소매판매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재고가 쌓이고 공장가동률은 뚝 떨어지고 있다. 연초 ‘그린 슈트(green shoots:새싹이 돋아나듯 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 조짐을 보이는 것)’ 기대감이 다시 꺾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구조조정 시작도 안했는데…'L자형 불황' 골 깊어지나
○소비진작 효과 사라져

산업생산이 석 달 만에 하락세로 반전하고 공장가동률은 7년1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4월 산업활동동향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는 “경기 위축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더구나 4월 지표는 조선과 해운 구조조정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주력 업종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산업 구조조정마저 본격화하면 경기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연초 산업생산의 일시적 호조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의 일시적 효과에 기인한 현상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국내 경기는 연초 조금 반등했다가 다시 악화되는 더블딥 현상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은 “대외 여건 악화로 수출 부진이 투자 및 내수 부진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2, 3월 반짝 지표를 끝으로 경기 둔화가 장기간 계속되는 ‘L자형 불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물경기 타격 현실화

공장가동률 저하로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늘어나는 등 경기 침체의 그늘은 산업계에 서서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감이 감소하면서 직원 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 설비 증설을 속속 포기하고 있다. 경기 수원에 있는 중견 통신장비 제조업체 A사는 작년 초 1000여명에 육박한 직원 수가 현재 5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이 회사의 납품처인 통신사들이 투자계획을 보류하면서 작년부터 수백억원대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경기 안산 반월시화산업단지에 있는 스마트폰 부품업체 B사는 베트남 공장 이전 계획을 중단했다. 최근 2년간 일감이 급감하면서 국내 공장가동률마저 70~80% 수준까지 떨어지자 베트남 공장 건설을 무기한 연기한 것이다. 중소 생활가전업체 C사는 올초 세운 상장 계획을 접었다. 작년까지는 매출과 이익이 늘었지만 시장에 ‘짝퉁’ 제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C사 관계자는 “국내 생산을 고집했지만 지금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중국에서 제품을 들여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성장률 2%대 중반도 힘들어

전문가들은 설령 5~6월 경기지표가 다소 반등하더라도 올해는 ‘상고하저’ 경기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실업 증가가 불가피해지고 개별소비세 인하 등 내수 진작책은 상반기에 종료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6월 미국 금리인상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외 환경 불안요인마저 가세되면서 경제 흐름을 되돌릴 카드가 변변찮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미국 금리인상으로 달러화가 다시 강세를 보인다면 신흥국은 자본 유출로 다시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정근 교수는 “이대로라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2.6% 달성도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반론도 제기된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4월 가동률이 떨어진 것은 물건이 안 팔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재고조정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연구부장은 “5월엔 수출도 회복되면서 경기 하방 압력이 상당히 낮아진 상황이 상반기 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상열/황정수/안재광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