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 콘택트렌즈, 헤어드라이어 등 다국적 기업의 독무대이던 생활소비재 시장에서 ‘토종 강소기업’이 판을 흔들고 있다.

질레트와 쉬크가 장악하던 면도기 시장에선 국내 기업 도루코가 급성장 중이다. 작년 매출이 354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늘었다. 영업이익은 세 배 이상 급증한 772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약 27%에 이른다. 질레트(62%)엔 못 미치지만 쉬크(10%)를 크게 앞섰다.

인터로조의 ‘클라렌’은 콘택트렌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10년 출시 후 6년 만에 국내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아큐브·바슈롬·시바비젼·쿠퍼비젼 등 4대 해외 브랜드의 굳건한 과점 체제를 깨뜨렸다. 헤어드라이어 업체 유닉스전자는 필립스 테팔 등 글로벌 가전업체와의 경쟁에서 국내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토종 다윗의 '세 가지 성공 방정식'
○OEM으로 제조 노하우 쌓아

이들 기업은 상당한 제조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시철 사장이 2000년 설립한 인터로조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시작했다. 콘택트렌즈 제조 공법 중 가장 까다로운 ‘몰드캐스팅’을 초기부터 도입했다. 이 공법은 표준화된 기계 공정을 통한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낮추는 기술이다. 탄탄한 제조라인을 갖춘 덕분에 2010년 자체 브랜드를 내놓고도 곧바로 ‘좋은 품질’과 ‘착한 가격’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도루코는 해외 대형 업체의 자체브랜드(PL) 제품 제조를 많이 했다. 2002년 프랑스 까르푸에 PL 면도기를 공급했다. 제조 능력을 인정받아 영국 테스코와 세인즈버리, 독일 알디 등에서도 PL 제품 생산을 의뢰받았다. 2012년부터는 미국에서 면도날을 저렴하게 배달하는 서비스로 인기를 끈 달러셰이브클럽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작년 매출 1억5300만달러(약 1840억원)를 기록한 달러셰이브클럽은 면도기와 면도날 전량을 도루코에서 받는다.

○소비 패턴 변화 포착해 기회로

소비 패턴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한 점도 비슷하다. 유닉스전자는 2013년 크기가 작고 알록달록한 색상을 입힌 여행용 드라이어, 고데기, 아이론 등을 묶어 ‘테이크아웃’이란 모델을 내놨다. 편의성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다. 판매하는 곳도 양판점이 아니라 올리브영 등 드러그스토어를 택했다. 이 전략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많이 찾는 올리브영 매장 내 매출 상위 5위 브랜드에 테이크아웃이 포함됐다.

인터로조는 눈동자가 크게 보이는 서클렌즈, 색깔을 바꿔주는 컬러렌즈 판매에 주력했다. 콘택트렌즈 시장이 시력 교정에서 미용 중심으로 이동하자 발빠르게 대응했다. 유럽 등 해외 기업은 시력 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기술에는 집요할 만큼 투자

세 회사는 모두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한다. 도루코는 1998년 처음 연구소를 설립한 뒤 매년 매출의 15~20%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다. 백학기 도루코 사장은 “피부에 상처가 나지 않는 부드러운 면도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도루코는 날을 촘촘하게 넣기 위해 ‘ㄱ’자 형태로 구부리는 기술을 처음 개발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 45%인 유닉스전자는 매년 70여개 모델을 새로 내놓는다. 조금이라도 제품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머리카락을 툭툭 털어주는 느낌이 나는 드라이어부터 머리카락 겉면은 말리면서 속의 수분은 유지해주는 이온 발생 드라이어, 유해 전자파를 차단하는 드라이어 등 다양한 기능을 선보였다.

안재광/이현동/조미현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