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도체, 철강 분야에서 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국내 관련 업계는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면서도 긴장하고 있다. 중국이 투자 속도를 조절한다면 과잉생산 우려를 일부 덜겠지만, 미국의 강력한 공조 요구로 함께 나서야 할 상황이 오면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업계에서는 중국의 부상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중국 업체들이 국가 자금으로 무작정 생산라인에 투자하고 있어 몇 년 뒤에는 칩 생산량 증가와 가격 폭락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액정표시장치(LCD)산업 등에서 발생한 일이다. 미국의 적극적 견제가 내심 반갑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36%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인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공조하면 노골적인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 중국의 불공정 지원에 공식적인 클레임을 걸 수 없는 이유다. 2000년 우리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다가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출이 중단되는 일을 겪은 기억이 전자업계엔 아직 생생하다.

미국 정부도 중국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기업들의 최대 반도체 시장도 중국이다. 중국 정부 말을 안 들었다가 퇴출된 구글처럼 미국 반도체 회사들도 어려워질 수 있다. 최근 인텔 퀄컴 등이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중국 시장이 워낙 중요해서다.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등 같은 처지에 있는 나라들을 끌어들여 공동으로 국제적 압력을 가하는 게 유리하다.

이 때문에 ‘잘못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고래 싸움에 한국 업계만 새우등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도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은 지난 10년 가까이 중국 업체들의 저가 철강제품 수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반덤핑 제소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하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진 못했다. 중국 측 보복이 걱정돼서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