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추진 발목 잡을 것" vs "정부가 개입 자초"

주요 경제 이슈인 기업 구조조정과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는 가운데 정치권이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해 추가적인 진통이 예상된다.

정치권 관여가 원활한 구조조정 진행 및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한편, 정부의 잘못된 대처가 정치권의 개입을 자초한 것이란 비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2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해 노조와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소유주의 대주주 지분을 매각해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해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형 국영기업체나 대우조선해양처럼 1만명 이상 고용하는 업체는 근로자들이 경영감시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종국에는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최근 서울메트로 등 산하 기관 15곳에 비상임 근로자이사를 도입키로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취지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같은 날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해 노조와 간담회를 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매우 구체적으로 병행돼야 한다"며 실업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같은 날 부산에서 열린 지역경제현안 간담회에서 구조조정과 관련, 부실 책임 규명과 전문가에 의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도부가 위기를 겪는 조선업의 현장을 경쟁적으로 방문해 지역 경제와 직결되는 고용 문제에 관해 직접 챙기고 나선 것이다.

정치권이 구조조정 이슈에 직접적인 개입 행보를 보이면서 구조조정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정치권은 구조조정과 관련해 필요한 입법활동을 하는 데 그쳐야지 과도하게 개입하면 구조조정이 정치실패를 가져온다"며 "어제 여야 지도부 행보를 보면 구조조정의 스텝이 이미 꼬이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김종인 대표의 노조 경영감시 발언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포퓰리즘적 발언"이라며 "정부도 구조조정 본격화 이후 성과 없이 시간을 끌면서 정치권 개입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 구조조정과 별개로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도 정치권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슈다.

앞서 정부는 공기업의 경우 다음 달 말, 준정부기관은 올해 말까지 관계 법령과 지침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63개 기관이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기로 했으나 이 가운데 12개 기관은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 거쳐 법적 분쟁 소지가 있다.

앞서 지난 20일 처음 열린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여야 3당은 성과연봉제 도입 시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여야 3당이 정부 측에 강조한 내용이지 정부와 합의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성과연봉제 도입이 노조 동의를 거치지 않거나 사측이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노사 갈등이 격화되자 정치권도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더민주는 한정애 의원을 단장으로 한 진상조사단을 꾸려 24일 산업은행을 방문해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부서장을 통한 강압적 동의서 징구 등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한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날 노사 양측과 대화를 마친 조사단은 "우리가 강압이라 보는 것에 대해 사측도 일정 부분 인정했으며, 이동걸 회장이 '그런 의도는 아니었으나 있었다면 유감'이라고 밝혔다"고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성과연봉제와 관련해 정치권의 직접적인 개입이 가시화하자 공공부문에 이어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노사간 협의를 앞둔 금융권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개혁이란 측면에서 기업 구조조정 현안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야권도 관심을 가지는 만큼 노사 협의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정치권 개입 역시 정부가 자초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와 관련해 낸 성명에서 "지금 노동현장의 혼란은 정부가 자신의 역할을 방기한 채 권한을 뛰어넘어 월권을 행사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정부가 노사합의 없이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가능하다고 해 사실상 불법행위를 부추기거나 금융공기업 기관장에게 산별노조 중앙교섭 탈퇴를 종용하는 등 노사문제에 개입했다"며 "3당이 의견을 모은 '성과연봉제 노사합의 추진'은 너무나도 당연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 해고와 무관하다.

민간 부문에서도 많이 도입해 시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노사갈등과 논란을 의식한 듯 "확대 과정에서 불법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