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권자 채무재조정·해운동맹 잔류 등 숙제 산적
살아남더라도 근본적 경쟁력 높여야


금융팀 = 현대상선이 정부에서 애초 정해둔 협상의 시한을 넘기면서 해외 선주들과 용선료 합의에 이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설령 어렵사리 협상이 타결된다 하더라도 남은 길이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협상이 타결된다면 가장 중대한 고비를 넘는 셈이 되지만, 이후로도 보류된 해운동맹 가입 문제를 해결하고 저조한 실적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 등 난관이 산적해 있다.

◇ 한 차례 실패한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재도전해야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에 성공한다면, 다음으로 넘어야 하는 관문은 사채권자의 채무재조정이다.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은 회사의 자구계획과 채권단의 자율협약, 해외 선주들의 용선료 인하, 비협약 사채권자들의 채무재조정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틀로 짜여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 구조조정 계획이 무너지고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24일 7천억원 규모의 출자전환 등 채무재조정 안건을 조건부로 통과시킬 계획이다.

여기에 용선료 협상도 진척이 이뤄지면, 마지막으로 비협약 채권자들이 출자전환에 가담하는 등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

앞서 현대상선은 지난달 17일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회사채 1천200억원의 만기 연장을 추진했으나 투자자들의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

용선료 협상이 잘 마무리되면 현대상선은 오는 31일과 다음 달 1일 올해와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모든 공모 사채권자를 대상으로 사채권자 집회를 열 계획이다.

집회 자리에서 회사채 8천43억원의 채무재조정 방안이 논의된다.

현대상선은 최근 사채권자 설명회를 열고 약 7천600억원 규모의 채권을 출자전환하는 내용의 채무 재조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용선료 협상이 잘 이뤄진다면 사채권자들의 채무재조정도 풀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조정안이 사채권자에게 너무 가혹하다며 조정안이 불발될 경우 용선료 협상 성패와 관계없이 법정관리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유동성 해결해도 해운동맹 잔류 못하면 생존 어려워

이해관계자들의 동참으로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끝난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은 글로벌 해운동맹 진입이라는 더 큰 산을 또 넘어야 한다.

최근 글로벌 해운동맹은 급속한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선복량 세계 3위인 프랑스 CMA CGM과 중국 코스코(COSCO·중국원양해운), 대만 에버그린 등이 합종연횡해 새로운 동맹체인 오션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이에 독일의 하팍로이드, 일본의 NYK, MOL, K-LINE, 대만의 양밍 등은 지난 13일 제3의 해운동맹체(THE 얼라이언스) 결성을 발표했고, 여기에 한진해운은 포함됐으나 현대상선은 제외됐다.

사실상 주요 항로를 과점하는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제외된다면 생존을 보장받기 어렵다.

해운동맹에서 제외되면 종전의 원양정기선 서비스를 포기하고 근거리 지역 서비스로 사업 구조를 개편해야 하고, 결국 시장성이 떨어져 법정관리나 합병 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대상선은 법정관리 가능성 때문에 참여 여부가 유보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이 'THE 얼라이언스' 결성을 주도한 독일 하팍로이드와 함께 해운동맹을 구성해 왔던 만큼, 내달 초 경영정상화 방안의 윤곽이 드러나고 재무 안정화가 이뤄지면 결국 새 동맹체로 편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생존하더라도 근본 경쟁력 강화는 풀어야 할 숙제

현대상선의 재무구조가 안정화하고 해운동맹 편입에 성공한다면 일단 큰 산은 대부분 넘은 셈이 된다.

그러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세계 무역이 위축된 여파로 글로벌 해운 경기가 악화돼 '치킨 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경쟁 선사들은 연료 효율성이 높은 초대형 에코십으로 중무장해 원가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현대상선은 그간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급한 불 끄기에 바빴던 것이 현실이다.

살얼음판을 걷듯 이어져 온 용선료 협상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서 파생된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해외 대형 선사들이 5년 전 정부 지원과 구조조정을 통해 대형 컨테이너선을 확보해 원가 경쟁력을 갖춘 반면, 현대상선은 가지고 있던 선박을 팔아 리스 형태로 전환하면서 유동성만 확보하고 경쟁력은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국내 원양선사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갖춰야만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지난해 말 12억 달러(약 1조4천억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면 1만40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0척의 신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 작업이 완료되면 부채비율이 200% 수준으로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