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결정권 제조업체로…대형마트 '10원 전쟁' 사라지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일정요건을 충족하는 제조업체에 제품가격의 최저 판매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허용 조치는 여러 가지로 파장을 낳을 공산이 크다.

우선 제조회사에 가격 결정권을 부여해 결과적으로 유통업체의 가격 경쟁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 공정위의 본래 목적인 경쟁촉진에 부합하느냐는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또 이것이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확대될 소지가 있다. 제조사와 유통업체 간 가격 결정권을 둘러싼 오랜 분쟁을 다시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다.

◆“중장기적 소비자 후생에 도움”

공정위가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허용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당장은 가격 경쟁을 막아 소비자에게 불리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공정한 시장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에게 유리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그동안 제조사가 최저 판매가격을 정하는 것 자체가 ‘시장의 경쟁을 제한한다’고 간주해 제재해왔다. 하지만 공정위 수뇌부는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가 시장 경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데 주목했다.

가령 제조업체가 유통점의 진열대에 제품을 전시하고 애프터서비스를 잘해주는 조건으로 모든 유통업체에 제품을 100원에 넘기고 최저 재판매가격을 150원으로 동일하게 정해주면 유통업체는 가격 출혈경쟁 없이 최소 50원의 이익이 보장된다. 소비자도 유통업체로부터 제품 설명을 상세히 들을 수 있고 수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이익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동안 대형 유통점에 휘둘렸던 중소 제조업체를 시장에 안착하게 하는 효과도 있어 경쟁 촉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일부 대리점의 ‘무임승차’ 방지”

일부 유통업체의 ‘무임승차’를 막겠다는 취지도 반영됐다. 예컨대 A대리점은 특정 제품을 팔 때 쇼룸을 설치하는 등 비용을 들인 뒤 130원에 팔고 B대리점은 아무 판촉활동 없이 A대리점보다 싼 125원에 판매하면 A대리점은 망할 수 있다. 결국 대리점들은 쇼룸을 모두 철거하게 되고 이로 인해 대리점 간 판촉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도 제품에 대한 정보가 없어져 손해다.

만약 제조사가 최저가격을 130원으로 정해주면 A대리점에 고객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허용하면 ‘무임승차’ 효과를 막을 수 있다”며 “흔히 경쟁이라고 하면 가격경쟁만 생각하지만 사실 신규업체의 시장 개척이나 서비스 경쟁 등도 ‘경쟁 촉진’에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중소 제조사 ‘환영’

중소 제조사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고 있는 가방 제조업체 C사장은 “가격 결정 과정에서 소외돼 있는 제조사들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대형마트에서 할인행사를 할 때 할인 폭을 제조사에 떠넘기기 때문에 원가를 맞추기 위해 제품 품질을 낮추는 일이 많았다”며 “최저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면 품질을 높이는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도 “유통업체의 최저가 경쟁이 심해지면서 영세한 제조업체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제조업체가 가격 결정에 참여한다는 취지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엔 ‘규제’

대형 유통업체들은 “새로운 규제가 생기는 꼴”이라고 반발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고객 유치를 위해 일부 상품은 손해를 보면서 원가 이하에 팔기도 한다”며 “최저가격 유지가 허용되면 제조사의 가격 전략에 휘둘려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가격 유지행위가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는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단서 조항도 모호하다는 평가다. 한 대형마트 상품기획자는 “가격을 낮출 때와 비가격경쟁을 할 때의 소비자 후생 차이를 무엇으로 계량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취지대로 서비스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른 온라인몰 관계자는 “제도가 시행돼 가격 할인이 어려워지면 무료 배송을 하거나, 배송 속도 개선 등 서비스 분야에 더 투자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전략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제조회사가 유통업체에 자사 제품을 일정 가격 이하로 팔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것. 공정거래법상 불허해 왔지만 과거 대법원이 허용한 판례에 따라 제한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다.

황정수/강진규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