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란혁명 직후 신정(神政)체제 수호를 위해 창설된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최대 공기업’으로 통한다. 이란 정부의 정규군과 별도로 12만5000여명 병력을 갖춘 혁명수비대는 원유·가스부터 교량·고속철도 건설, 이동통신사업까지 주요 기간사업을 도맡아 한다. 핵무기 개발로 서방 국가의 경제제재가 가해지면서 떠난 외국기업이 이란에서 하던 사업을 맡게 되면서다.
'경제 실세' 혁명수비대, 이란 부활 발목잡나
지난 1월 서방 국가의 경제제재가 풀리자 혁명수비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 등 주요국과 핵협상을 타결지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외국자본을 다시 끌어들여 민간부문 활성화를 꾀하자 나타나는 변화다. “이란 경제 주도권을 놓고 이란 정부와 혁명수비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서방언론들은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 2일 이란 국빈방문을 통해 456억달러(약 52조원)어치의 이란사업을 수주했다.

○혁명수비대 견제 나선 이란 정부

이란 정부는 지난해 여름 핵협상 타결을 앞두고 혁명수비대, 중국철도건설그룹(CRCC)이 2010년부터 추진하던 고속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수도 테헤란과 종교도시 콤 간 약 156㎞ 구간을 고속철이 시속 250㎞로 달리게 하는 사업이다. 규모는 27억달러(약 3조원)였다.

이란 정부는 새 사업자 선정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정부가 독일 지멘스, 이탈리아 국영철도 회사 페로비에 델로 스타토 이탈리아네와 협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혁명수비대 사업 가운데 로하니 정부가 제동을 건 것은 고속철만이 아니다. 이란국영가스공사(NIGC)는 혁명수비대 산하 건설·에너지기업인 카탐 알안비아와 맺은 13억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의 가스파이프라인 건설 계약을 취소했다. 교량 건설도 중단됐다. 카탐이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와 그 앞 케슘섬을 연결하는 약 2㎞ 길이 다리를 건설하던 공사였다. 양측은 서로를 비난한다. 정부 측은 “카탐이 정부의 돈을 빌려 쓰고도 제대로 갚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반면 카탐 측은 정부 지원이 끊겨 공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며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투자 유치·경제 발전 걸림돌

로하니 대통령은 이달 국영 INR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갈등도 없다”고 말했다. 에바달라 압둘라히 혁명수비대 총사령관도 “정부와의 관계에 어떤 문제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도자를 제외한 양측은 공공연히 서로를 견제하며 긴장을 높이고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정부 대변인인 무함마드 바게르 노바크트는 “혁명수비대의 역할은 민간이 수행할 수 없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로 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압둘라히 사령관의 측근은 “정부가 경제발전보다 혁명수비대를 고립시키는 데 더 열중한다”고 주장했다. 압둘라히 자신도 지난해 12월 “이란 석유부 관료들이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려는 데는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고 공격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혁명수비대를 견제하는 이란 정부에 지지를 보낸다. 정부 입찰 프로젝트에서 혁명수비대와 맞붙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혁명수비대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법도 있지만 미국 정부가 인권 유린을 이유로 혁명수비대에는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있어 사업 위험이 크다.

혁명수비대가 이란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전 정권의 특혜 속에 경제사업부문이 워낙 비대해진 탓이다. 카탐의 건설·에너지 수주액은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2%에 이른다. 가르비스 이라디안 국제금융협회(IIF)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이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5.5%에서 4%로 낮춰잡았다. 그는 “혁명수비대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개혁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