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기업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해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들 가운데 큰 주목을 받았다. 대(對)중국 매출 증가세와 80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상품군을 감안하면 지난해 상장한 잇츠스킨(19일 시가총액 1조5322억원)에 뒤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 매력이 높아 상장 전에 배정 물량을 확보하려는 증권사들 간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베일 속의 비상장사] IPO 직전 좌초한 네이처리퍼블릭…'정운호 스캔들'에 시총 1조 증발
연평균 30%대 고성장

하지만 이 회사 대표 정운호 씨가 지난해 말 해외 도박 혐의로 구속 수감되면서 모든 장밋빛 청사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최근엔 법조계 로비 혐의까지 불거지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 대표는 국내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숍 1위 더페이스샵의 창업자다. 창업 2년 만인 2005년에 업계 1위이던 미샤(에이블씨엔씨)를 추월하면서 일약 ‘스타 CEO(최고경영자)’ 반열에 올랐다. 이어 네이처리퍼블릭도 매출 2800억여원의 기업으로 일궈내 ‘화장품업계 미다스의 손’이란 별칭을 얻었다.

정 대표가 네이처리퍼블릭(전 장우화장품)을 인수한 때는 2010년. 더페이스샵 경영권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넘긴 지 5년 만이었다. 그의 수중엔 1000억원대 현금이 떨어졌다. 이후 더페이스샵은 LG생활건강으로 넘어가 국내 1위 브랜드숍으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를 맞이한 네이처리퍼블릭의 성장세는 폭발적이었다. 2011년 907억원이던 매출은 2012년 1000억원(1284억원)을 넘어선 뒤 지난해엔 2848억원으로 불어났다. 2011년 7위이던 업계 순위(매출 기준)도 2014년 5위까지 올랐다.

1만원 이하 제품을 주력으로 하면서도 품질과 디자인이 고가 브랜드에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로에 인삼 등 천연 성분 재료를 사용한 제품이 각종 ‘블라인드 테스트(상표나 로고 등을 가리고 순위를 매기는 테스트)’를 휩쓸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김미연 네이처리퍼블릭 마케팅본부 이사는 “화학 재료보다는 자연 성분을 좋아하는 중국인을 겨냥해 회사명을 네이처리퍼블릭(중국명 자연공화국)으로 정하는 등 브랜드 콘셉트를 초반에 잘 설정했다”고 말했다.

기약 없이 보류된 IPO

네이처리퍼블릭의 성장판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지난해 상반기부터다. 경쟁 격화로 판매·관리 비용이 늘면서 2014년 162억원이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03억원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정 대표 구속 사태가 터지면서 지난 1분기 매출(713억원)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전년 동기(757억원)보다 줄어들었다.

경쟁사에 비해 비용 지출이 많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판매 및 관리비는 2013년 1109억원에서 지난해엔 1649억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경쟁사인 잇츠스킨(지난해 783억원)과 토니모리(1010억원) 등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기업공개(IPO) 작업은 올스톱 상태다.

정 대표는 평소 “1조원 이하의 시가총액으로는 IPO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했지만 IPO 자체를 기약할 수 없는 여건이다. 장외시장에서 회사 가치도 급락하고 있다. 최고 17만3500원(지난해 7월9일)까지 올랐던 주식 가격은 5만원까지 떨어졌다. 현재 시가총액은 3700억여원으로 10개월 전의 최고치(1조3100억여원)에 비해 1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중국 기업, 인수가 1조원 제시

네이처리퍼블릭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 대표를 보좌해 회사 성공을 이끈 팀장급 이상 간부들이 버티고 있고 중국 등 해외 사업의 성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한 곳에 불과하던 중국 현지 지점 수는 올해 17곳으로 늘었다. 해외 사업 매출 비중은 12% 수준으로 업계 평균을 웃돈다. 정 대표가 구속된 와중에도 최근 중국계 유통기업 한 곳이 국내 증권사를 통해 1조원의 인수금액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있다. ‘수딩 앤 모이스처 알로에베라’ 후속으로 내놓은 ‘진생 로얄 실크 워터리 크림’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세계적 화장품 품평회인 ‘2016 몽드셀렉션’ 화장품 부문에서 대상인 그랜드 골드상을 받은 제품이다. 올 들어 전년 대비 매출이 98% 늘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생존 및 성장은 ‘정운호 스캔들’의 여파가 얼마나 이어질 것이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투자은행(IB)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 관계자는 “워낙 휘발성이 강한 스캔들이어서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