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확충펀드 조성 사실상 합의…한은 직접출자·지급보증 입장차
한은 펀드 대출금 조기회수 방안 요구…새 걸림돌 작용할 듯

정책·금융팀 = 조선과 해운 등 한계산업 구조조정의 실탄 마련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의 큰 가닥이 잡혔다.

한국은행이 애초 제안한 것처럼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이들 산업을 지원한다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한은이 사실상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실행 작업에 착수하기까지는 여전히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한은의 직접출자 여부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펀드 대출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여부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문제다.

여기에 한은이 대출금 조기회수 카드를 새롭게 꺼내 들었다.

갈등이 서둘러 봉합되지 않으면 구조조정에 실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자본확충펀드 통한 간접출자 방식엔 사실상 합의

19일 열린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 2차 회의 결과 보도자료에는 "향후 구조조정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직접출자와 자본확충펀드를 통한 간접출자 방식을 병행하는 안을 폭넓게 검토했다"고 명기돼 있다.

앞서 지난 4일 열린 협의체 1차 회의 결과에서는 자본확충펀드에 대한 언급 자체가 빠져 있었다.

2차 회의를 통해 정부와 한은이 자본확충펀드 조성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자본확충펀드는 다가올 구조조정을 대비해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한은에서 먼저 꺼내 든 카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4일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자 독일에 머무르던 중 기자간담회를 열어 은행 자본확충 방식으로 출자보다 대출이 바람직하다며 자본확충펀드 방식을 제안했다.

이어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간담회에서도 자본확충펀드를 하나의 대안으로 관계기관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본확충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정부와 한국은행이 은행의 자본을 확충해주기 위해 사용했던 방식이다.

한은이 대출해준 돈으로 펀드를 만든 뒤 펀드가 은행의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확충해줘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주는 것으로, 일종의 우회출자다.

한은의 제안에 대해 정부 측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자본확충펀드 조성은 급물살을 탔고 이번 회의에서 사실상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본확충펀드의 조성방식과 규모 등 세부사항은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협의체는 늦어도 다음 달 중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수시 협의를 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 각론에선 이견 못 좁혀…한은 '조기회수 방안' 요구까지

두 차례 회의를 통해 큰 틀의 가닥은 잡힌 모양새지만 실상 기재부와 한은 간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은 펀드에 대출해주는 대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대한 직접출자 역시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펀드 방식으로 국책은행을 지원하더라도 '손실 최소화·대출기간 최소화'라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국책은행이라고 해도 대형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리스크를 떠안는 만큼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중앙은행 대출금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이 필요하며, 수은에 한은이 직접 출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협의체는 이날 회의에서 직접출자와 간접출자를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밝혔지만 직접투자의 주체는 따로 명기하지 않아 의문을 남겼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의 공식입장은 '직접 출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출을 통한 펀드 방식만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기재부 관계자는 "보도자료 내용 이상의 것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한은은 한발 더 나아가 펀드가 국책은행의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을 매입해 들고만 있으면 대출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는 만큼, 이를 유동화해 조속히 상환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이 총대를 메는 펀드 방식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자본확충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방향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한은이 점점 더 방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재정 지원에 대한 그림이 나와야 한은이 움직일 것"이라면서 "각 기관의 입장이 절충돼야 지금보다 진전된 안이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부와 한은은 수시 협의를 통해 이견을 좁힌다는 계획이지만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감안하면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3차 회의는 언제 열릴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필요한 때가 되면 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종·서울=연합뉴스) pdhis9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