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요건 강화…2위 출자국 일본 기업 수주 증가 기대

미국과 일본이 1, 2위 출자국인 세계은행(WB)이 7월부터 개발도상국 등에 대한 사회기반시설 건설사업 융자를 심사할 때 환경이나 주민에 대한 배려와 같은 '질(質)'을 중시하는 내용으로 전환한다.

최저가격을 중시하는 현재의 인프라 사업 입찰 방식으로는 안정성 등이 취약한 인프라가 건설되기 쉽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특히 본격 가동을 앞둔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일본 언론은 분석했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인프라 융자 때 품질 관련 항목을 추가한 입찰규정을 마련해 7월부터 시행한다.

질을 중시하면 일본 기업의 인프라 수출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번 규정 개정은 일본 정부가 세계은행에 심사 방식 재검토를 강하게 제기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도 보조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달 하순 주요7개국(G7)정상회의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나선다.

새 규정에는 기존 건설비 항목에 더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나 건설 예정지 주민에 대한 배려, 기업 기술력 등 비(非)가격 요건을 복수로 설정한다.

이들 요건은 일본 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다.

현재 세계은행은 각국 기업의 연합체 등이 신흥·개발도상국에서 댐이나 발전소 등의 거대 인프라 프로젝트에 입찰해 낙찰을 받으면 저금리로 거액의 자금을 장기융자하고 있다.

새 규정이 적용되면 세계은행은 환경 등 품질에 관한 평가의 배점 비율을 최대 50%로 높여 조건에 미달한 프로젝트에는 융자하지 않을 방침이다.

가격에서도 단순가격은 물론 유지관리나 보수비용 포함 여부를 심사한다.

닛케이에 따르면 세계은행 융자 개혁의 배경에는 AIIB가 있다.

AIIB는 신속한 융자심사 방식이 개도국 등으로부터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질적인 면에서 개발융자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흐름에서 세계은행의 심사 개혁안은 투명성이 높은 입찰이나 융자심사를 통해 개발금융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물론 세계은행은 AIIB와 협조융자 등에서 제휴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세계은행에 대한 출자비율은 7.2%로 미국(16.7%) 다음으로 높고 중국(4.6%)이 3위다.

그러나 세계은행이 융자한 인프라 사업 가운데 일본이 수주한 것은 작년에 13건으로 전체의 0.1%에 그쳤고 금액으로도 1억2천만달러(약 1천409억원)에 불과했다.

출자비율에 비해 존재감이 극히 미약하다고 닛케이는 주장했다.

지금까지 거대 인프라 입찰 경쟁 때 가격 면에서는 한국이나 중국, 인도 기업이 우위를 보였다.

따라서 일본경제계에는 세계은행 심사 규정 개혁을 통해 "일본 업체의 사업 기회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tae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