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국내 은행권에 ‘미얀마 쇼크’라는 말이 돌았다. 그해 10월 미얀마 정부가 발표한 외국계 은행 지점설립 예비인가에서 국내 은행 3곳(국민·신한·기업은행)이 모두 탈락했기 때문이다. 신청서를 낸 일본,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 등 6개국 은행 9곳은 예비인가를 받아 충격은 더 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국내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 미얀마 등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발발하자 해외 지점 상당수를 폐쇄했다. 미얀마에 지점을 낸 은행들도 모조리 철수했다. 반면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은행들은 1990년대 초 미얀마에 진출해 20년간 자리를 지켰다.

당시 현지에서는 지점설립 예비인가 대상에서 한국계 은행만 빠진 것은 이런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국계 은행의 미얀마 재진출은 1년6개월이 지난 올해 3월(신한은행 예비인가 획득)이 돼서야 가능했다.

미얀마 쇼크는 국내 금융회사에 근시안적인 접근법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국내 여건은 여의치 않다. 국내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임기는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단기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장기적 안목으로 해외 전략을 짜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해외 진출 성과가 나지 않거나 위기를 맞았을 때 ‘손바닥 뒤집기’ 식으로 해외 지점을 철수하는 일도 생긴다.

그런 점에서 KEB하나은행의 필리핀 진출 성공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KEB하나은행은 옛 외환은행이 1995년 마닐라에 지점을 연 뒤 21년간 필리핀에 공을 들였다. 2013년에는 클라크에도 지점을 열었다. 이 덕분에 필리핀 정부가 2014년 지점 10개 이하의 소규모 은행에 대해 최소 자본금을 24억페소에서 40억페소로 올릴 당시, KEB하나은행은 기존 자본금만 가지고도 지점을 10개까지 늘릴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