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업무용 에어컨업체 다이킨공업과 일본 내 가정용 에어컨부문 1위인 파나소닉이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 지난주에는 일본 최대 철강사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스미토모금속)이 닛신제강 지분을 공개매수하겠다고 했고, 일본 최대 전자업체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은 지분 교차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덩치를 키우는 일본 산업계의 ‘새판 짜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산업 재편이 특징이다. 인구 감소로 내수시장이 쪼그라들고, 글로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경영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다. 일본 정부와 의회는 일찌감치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해 업계 재편을 지원하고 있다.
에어컨 업계도 대형화…일본, 자율적 구조조정 속도 붙었다
◆경쟁관계 접고 상호 보완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이킨공업과 파나소닉은 에어컨사업에서 포괄적 제휴를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차세대 냉매 등 친환경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부품 조달도 함께한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에어컨을 생산해 상호 공급하는 것도 검토한다. 상호 보완적으로 신흥시장을 공략하고 성장 전략을 가속화하려면 경쟁관계를 접고 손잡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양사는 올여름 최종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목표다.

지난 13일 신일철은 일본 시장 4위인 닛신제강 지분을 공개매수해 자회사화한다고 발표했다. 닛신제강 지분을 8.3%에서 51%까지 늘리기로 했다. 원가 절감으로 수익성을 확보해 중국발(發) 글로벌 공급 과잉을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같은 날 히타치제작소는 전혀 다른 업종인 MUFG와 손 잡았다. 히타치가 MUFG에 자회사 히타치캐피털 지분 27.2%를 넘기고, 히타치캐피털은 시장에서 미쓰비시UFJ리스 주식 3%를 취득하기로 했다. 12일 닛산자동차는 연비조작 사태로 경영위기에 빠진 미쓰비시자동차에 2370억엔을 투자해 지분 34%를 인수하기로 했다. 부품조달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산 거점을 통합운영할 수 있다는 이점을 노렸다.

◆급변하는 시장에 공동대응

일본은 19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은행이나 종합상사 내 재편이 많았다. 이후에도 감독기관, 은행 등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사업 재편이 이뤄진 사례가 종종 있었다. 최근 일어나는 일본 산업계 재편은 자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이킨과 파나소닉 모두 에어컨사업에서 수익을 내고 있으며 이 분야를 주력 또는 성장산업으로 꼽는다. 히타치는 사회인프라 구축 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세계 인프라시장을 공략해가고 있다. 후쿠모토 히데카즈 MUFG 전무는 제휴 발표 뒤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제휴로 전력, 교통 등 히타치의 인프라 수출을 금융 측면에서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자동차업체 간 재편은 급변하는 미래 자동차시장 변화에 공동대비하는 측면이 있다. 업체들은 자율주행이나 연료전기차 등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2조7000억엔 규모 연구개발(R&D)비를 쏟아부은 닛산 등 7대 일본 자동차업체는 올해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R&D 부담이 커지면서 업체 간 개발비와 인적 자원을 분담하는 제휴가 확산되고 있다. 부품을 공동구매하고 생산거점을 통합운영하면 생산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금융 및 음식료업계 사업 재편은 내수시장 축소에 대비하는 포석이 깔려 있다. 일본 우정그룹 산하 간포생명보험과 업계 4위인 다이이치생명보험은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에서 공동 투자·융자 등을 포함해 포괄적 제휴를 맺었다. 식품 가공업체 이토햄과 요네큐가 통합해 지난달 1일 새롭게 출범한 이토햄요네큐홀딩스가 노하우를 공유하기로 했다.

◆풍부한 유동성도 한몫

일본 산업계 재편을 촉진하는 배경으론 풍부한 유동성도 꼽힌다. 상장사들은 최근 3년간 실적이 호조를 보이면서 약 100조엔에 이르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로 자금조달 비용은 더욱 낮아졌다. 일본 정유업계 5위인 쇼와셀석유를 합병하기로 한 2위 이데미쓰고산은 쇼와셀 주식을 취득하기 위해 올 상반기에만 1700억엔을 조달한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선제적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분위기다. 산업경쟁력강화법에 따라 정유와 석유화학, 판유리 등을 공급과잉 업종으로 지정하고 자발적 통폐합을 유도하고 있다. 업계 공급과잉 구조를 해소하는 짝짓기라면 해당 통합기업에 세제 및 금융상 혜택도 주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도해 조성한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는 일본 반도체연합인 르네사스테크놀로지와 중소형 LCD 통합회사인 재팬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업체인 JOLED 탄생을 주도했다.

닛산 경영진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최측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만나 미쓰비시자동차 인수계획을 이례적으로 사전보고한 것도 정부 생각을 알고 협조를 구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