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수출파워 세계를 연다] 외환·금융위기 때 지점 폐쇄 등 좌절…2014년부터 재도전 "100년 대계 세워라"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역사는 길지 않다. 씨티나 스탠다드차타드, HSBC 등 미국·영국계 은행들이 100년 넘게 해외시장에 공을 들여온 데 비해 국내 은행이 해외영업을 시작한 건 길게 잡아야 50년, 대체로 30년 정도에 불과하다.

최초의 해외 지점을 연 건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이다. 외환은행은 1967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 지점을 열었다. 정부는 당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을 타결한 직후 차관을 들여오는 통로로 외환은행 지점을 개설했다. 외환은행을 시작으로 이듬해 4월 민간 은행 중 처음으로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이 도쿄지점을 냈으며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도 뒤따라 일본에 진출했다.

초창기 국내 은행의 해외 지점은 연락사무소에 가까웠다. 영업을 하는 점포라기보다는 정·관계 고위 인사나 본점 경영진의 해외출장 때 의전을 하는 게 주 역할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 국내 대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는 데 맞춰 은행들도 해외 지점 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1997년엔 국내 은행 해외 점포는 198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은행 해외 진출의 발목을 잡았다. 1998년 국내 은행권의 해외 순손실이 10억달러를 넘어서자 주요 은행은 일제히 해외 점포를 폐쇄했다. 1999년 은행 해외 점포는 103개로 감소했다. 당시 해외 지점의 대출·결제 자금을 국내 본점에서 달러로 공급하는 형태였는데, 외환위기로 달러 수급이 어려워지자 해외 지점의 영업력이 급격히 악화된 게 원인이었다.

외환위기 여파는 꽤 오래갔다. 은행권 해외 진출이 다시 기지개를 켠 건 2007년이다. 그해 말 해외 점포는 120개, 2008년 말엔 128개로 늘었다. 그러나 위기는 또 찾아왔다.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은행들의 해외 점포 수익이 다시 악화됐다. 국민은행은 그해 3월 카자흐스탄 현지은행인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지분 41.9%를 약 1억달러에 사들였으나 1년 만에 가치가 10분의 1로 떨어져 곤란을 겪었다. 이 여파로 다른 은행들도 해외 진출을 극도로 자제했다.

해외 진출 바람은 2014년 다시 불기 시작했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세계 최대 금융기업인 미국 씨티그룹도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지 100년이 넘도록 큰 이익을 내지 못했다”며 “금융의 해외 진출은 긴 호흡을 갖고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