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때 투자 결단…에쓰오일 '슈퍼 이익'
에쓰오일이 올 1분기 글로벌 정유업계 최고 수준인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이 회사는 작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 중 가장 낮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정유업계가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던 2014년 하반기 에쓰오일이 내린 투자 결정이 획기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1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1분기에 매출 3조4284억원과 영업이익 4914억원을 올려 영업이익률이 14.3%에 달했다. 작년 1분기(5.4%)보다 8.9%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2004년 4분기 이후 12년 만의 최고 영업이익률이다. SK이노베이션(8.9%)과 현대오일뱅크(7.9%) GS칼텍스(5.8%)는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였다.

에쓰오일의 작년 3분기와 4분기 영업이익률은 각각 0.4%와 -1.1%로 정유 4사 중 꼴찌였다. 하지만 윤활유 원료인 윤활기유부문과 석유화학부문 영업이익률이 1분기에 각각 39.2%와 22.7%로 뛰면서 전체 수익성이 개선됐다.

에쓰오일의 영업이익률은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 정제설비를 보유한 인도 릴라이언스(14.9%)에 육박했다. 릴라이언스는 대규모 설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수익성 부문에서 ‘글로벌 톱’으로 인정받는 정유기업이다.

에쓰오일이 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로는 작년 초부터 본격화한 ‘울산공장 시설개선 사업’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슈퍼(SUPER: S-OIL upgrading program of existing refinery)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사업에 에쓰오일은 2015년 1417억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2213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불황때 투자 결단…에쓰오일 '슈퍼 이익'
○슈퍼 프로젝트의 성과

에쓰오일은 슈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년 3분기에 윤활유 원료인 윤활기유와 폴리에스테르의 원료로 쓰이는 파라자일렌(PX) 생산설비 개선작업을 잇달아 마무리했다. 그 결과 에쓰오일은 고급 윤활기유(그룹Ⅲ)와 PX 생산량을 종전보다 각각 40%와 10% 늘릴 수 있었다.

운(運)도 따랐다. 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을 전후로 두 제품의 스프레드(원료와 제품가격 간 차이)가 큰 폭으로 확대돼 설비개선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2014년 하반기 글로벌 유가 급락으로 타격을 받은 정유 및 석유화학 기업들이 해당 제품의 생산량을 줄이거나, 예정돼 있던 설비증설을 미루면서 공급이 부족해진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t당 각각 평균 281달러와 332달러였던 윤활기유 및 PX의 스프레드는 올 1분기에 288달러와 385달러로 확대됐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회사가 처한 현실과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는데, 운도 따라줬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작년 한 해 슈퍼 프로젝트로 인해 나타난 수율(총 생산량에서 정상제품이 차지하는 비율) 개선으로 950억원, 에너지 효율 개선으로 489억원 등 총 1720억원의 영업이익 증가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에쓰오일은 올 하반기엔 고도화 탈황시설 개선작업을 마무리해 고부가가치 제품인 초저유황경유(ULSD) 생산량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에쓰오일이 생산설비 개선작업을 마무리한 윤활기유와 PX는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2분기에도 스프레드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슈퍼 프로젝트 효과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어려울 때 내린 결단

정유업계에선 2014년 하반기 업계 전체가 어려움에 빠진 가운데 에쓰오일이 내린 결단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 기간에 국내 정유업계는 국제 유가가 44%(두바이유 기준) 급락하는 바람에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을 냈다. 에쓰오일 2897억원을 비롯해 정유 4사가 총 751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CEO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CEO
에쓰오일은 악조건 속에서도 공장 운영비용 감축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능력 증대를 위해 울산공장 생산시설 개선계획을 수립했다. 실무진으로부터 설비개선 필요성에 대해 보고받은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최고경영자(CEO)는 이 계획을 실행키로 결정했다. 이후 모기업인 사우디 아람코 인사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전방위적으로 설득해 2014년 말에 최종 승인을 얻어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산업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라며 “불황기에 접어들면 대형 투자를 단행하기가 쉽지 않지만 에쓰오일은 결단을 내렸고, 지금은 그 과실을 따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