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 열기 전에…기업 겨누는 '야대(野大) 국회'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제민주화’ 이슈를 경쟁적으로 꺼내 들고 있다.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와 법인세 인상, 성과공유제 확산 등 한결같이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기업의 투자환경을 더 위축시키는 등 기업생태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당은 12일 정책조정회의를 열어 기업 사내유보금에 추가 과세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기업소득환류세제 개편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김성식 정책위원회 의장은 “기업이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구입해도 투자로 간주해 세금을 깎아주고 있다”며 “기업소득환류세제를 투자 지향적이고 분배 지향적으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기업이 얻은 이익에서 금융수익을 분리해 고율로 과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이 금융자산을 운용해 벌어들이는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법인세율(최고 22%)이 아니라 금융소득종합과세(최고 38%)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기업의 사내 유보를 억제해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자는 취지다.

더민주도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경제민주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구상하는 ‘경제민주화 패키지’에는 기업 법인세 인상을 비롯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대·중소기업 공정 경쟁을 위한 생태계 조성,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비롯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경제 브레인’으로 꼽히는 최운열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은 기존 순환출자는 그대로 두고 신규만 금지했지만, 우리가 보기엔 기존 순환출자도 해소해야 한다”며 “기존 순환출자구조에서는 새로운 기업군이 탄생할 수 없어 진정한 경제민주화에 배치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태풍 부는데…경제민주화 선명성 경쟁 나선 2野

국민의당은 기업소득환류세제 개편안을 당론으로 확정한 데 이어 기업소득 분리 과세안까지 꺼내들었다. 분리 과세안은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10일 국민의당 20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제안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자·배당 수익에 대한 세율을 높여 자금 운용이 아니라 신제품 개발과 신시장 개척 등 기업 본연의 활동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생각할 수 있는 정책 제안이니 검토하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당은 △복지 확대·적정 재정 △일자리·비정규직 문제 △구조조정·신산업구조 재편 △공정성장·소득 재분배 강화 △공교육 강화·개혁 등에 대해서도 정책 대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22%로 낮춘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 전 수준인 25%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가 기업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고 세수 확충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더민주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논거다. 더민주는 최근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도 법인세 인상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의당도 복지 재원 마련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인세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법인세율 인상에는 부정적이지만 비과세·감면을 축소해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야권은 기업 지배구조도 정조준하고 있다. 더민주는 대기업 기존 순환출자 해소,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대기업 산하 공익법인의 계열사 보유 지분 의결권 제한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재벌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소수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더민주 민주정책연구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은 “순환출자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향, 순환출자에 따른 비용이나 거기서 누리는 나쁜 편익을 줄이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 3당은 총선 공약 중 공통분모가 있는 것은 함께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아 경제민주화 공약 중 일부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3당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으로는 대·중소기업 성과공유제 도입 확대가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은 “대·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면 원천적인 소득분배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대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중소기업 근로자와도 공유하는 구조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불공정 거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에 대해서도 3당이 비슷한 취지의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산업계는 거세지는 경제민주화 바람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세 부담이 늘어나고 규제가 강화되면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기업소득환류세제를 강화하면 유통업계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사업 특성상 창고나 물류센터 등 부동산이 많이 필요하다”며 “사업용 부동산에 대한 세 혜택이 사라지면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는 기존 순환출자 해소 등 기업 지배구조 관련 정책도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계열사 지분 매입에 큰돈을 들여야 한다”며 “그만큼 투자 여력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재정금융팀장은 “기업 이익에서 금융소득을 분리해 고율로 과세하겠다는 것은 선진국에서 사례가 드문 또 하나의 기업 규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성태/유승호/임현우/김순신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