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선사 위기에 당장 큰 변화는 없어…감독관들 "폭풍전야 고요함"

9일 부산해양수산청 근로감독관실의 전화기 벨이 잇따라 울리고 감독관들이 전화기를 붙잡고 상담에 매달렸다.

내용은 주로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 등이었다.

직접 방문해 상담하는 선원들도 있었다.

이날 하루 12명이 찾아와 재해보상, 퇴직금 등에 관한 문제를 의논했다.

선원들이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거나 재해를 둘러싼 보상 등을 놓고 선사와 마찰이나 갈등을 빚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근로감독관실이다.

부산해수청에는 하루에 평균 5∼6명이 방문해 상담이나 진정을 접수하고, 전화로 상담하는 사람은 40∼50명에 이른다.

국적 상선과 원양어선 대부분이 선적을 두고 있고 관련 사업장의 30% 이상이 몰린 부산해수청 근로감독관실의 분위기는 우리나라 해운·수산업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가늠자 같은 장소이기도 하다.

2013년 9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하는 권영호 감독관은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해운업과 수산업이 여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 국적선사 2곳의 경영위기를 계기로 해운업 불황 문제가 이슈가 된 후에 당장 큰 변화는 없다"면서도 "전화상담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특히 해운업 불황이 이어지다 보니 최근 몇년 새 선사들이 인건비를 줄이려고 법정 필수인력만 유지하고 나머지 선원을 내보내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임금과 퇴직금, 실업수당 관련 상담·진정이 늘고 있다.

2012년 이후 부산해수청 근로감독관실에서 접수한 임금과 퇴직금 재해보상, 실업수당, 유급휴가 등 각종 진정사건은 매년 300건선이다.

임금과 퇴직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에는 전체 293건 가운데 임금(124건)과 퇴직금(26건)이 절반을 넘었다.

재해보상 관련 48건, 실업수당 등 기타 87건, 유급휴가 관련 8건이었다.

올해는 4월 말까지 70건이 접수됐는데 임금과 퇴직금이 각 16건, 재해보상 15건, 실업수당 15건 등 순이었다.

임금과 퇴직금 체불규모는 2012년 11억7천여만원, 2013년 8억5천만원, 2014년 17억8천여만원에서 지난해에는 46억4천여만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4월 말 현재 9천9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임금과 퇴직금 체불규모가 급증한 것은 내항상선 3개, 외항상선 1개, 원양어선 1개, 연안여객선 1개 등 6개 업체가 도산한 영향이 컸다.

근로감독관들은 "올해는 국적선사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적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퇴출되면 국적선사와 연계해 동남아국가 등지의 화물을 부산으로 실어나르는 중소선사들이 직접 타격을 받아 경영난에 처할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 위기가 도미노처럼 번져 다른 선사들마저 선박이나 인력 감축에 나서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 감독관은 "지금 상태를 비유하자면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각자 어려운 사연을 가진 선원들이 도움을 받고자 찾는 곳이 근로감독관실이다 보니 가끔은 선원들이 참았던 불만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매일 수많은 선원을 직접 면담하거나 전화로 상담해야 감독관들이 최대한 선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챙겨주지만 상담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선원이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심지어 행패를 부리는 일도 있다.

부산해수청 근로감독관실의 홍일점 김호견씨는 "두번째 감독관실에서 근무하는데 처음 근무할 때는 여성비하와 폭언 때문에 정말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권영호 감독관은 "선원들이 욕설하고 행패를 부려도 감독관들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으려고 애써야 하는 자리인 만큼 묵묵히 감내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우리도 감정 노동자"라며 웃었다.

감독관들은 "선원의 상담이나 진정을 접수하면 선사 관계자나 선주를 불러서 체불 임금 규모 등을 파악해 지급하도록 지시하고, 때로는 대질조사도 해야 한다"며 "실업수당 지급 문제와 재해보상 등은 선원과 선사의 주장이 달라 임금문제보다 더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용환 노정계장은 "전국 선박의 절반이상, 사업장의 30%이상이 부산에 몰려있고 상선과 원양어선 선원 대부분이 부산을 통해 승하선하는데 감독관이 4명밖에 안돼 상담과 사건조사, 검찰송치는 물론 매년 180여개 사업장에 대한 근로여건 현장조사 등을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많다"며 "조금 더 원활한 업무를 위해 인력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lyh950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