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때 흔히 제시하는 ‘착한 명분’은 ‘육성’이다. 면세점 정책도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해당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시장 참여자들 모두를 불만에 가득차게 했다.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꼽히는 면세점 정책,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최근 몇 년간 한국 면세점 정책의 혼선은 2013년 시행된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관세법 개정안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사업권 유지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절반으로 단축해 5년마다 원점에서 재심사하도록 하는 바람에 장기 투자를 못하게 막고 고용 불안까지 부추겼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측면도 없진 않았다. 개정안 시행 후 정부는 작년 11월 특허심사를 벌여 멀쩡하게 영업해 오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면세점 워커힐점의 사업권을 회수했다. 이후 업계 불만이 쏟아지고 대량 실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지난달에는 네 곳의 서울 시내면세점을 추가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갈지자 행보’를 보인 것이다.
면세점 정책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꾼 2008년, 정부가 '홍종학 법안' 빌미 제공했다
하지만 면세점 40년 역사를 통틀어 길게 보면 근본 원인은 정부에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자율경쟁을 통해 잘 굴러갔을 시장에 정부가 허가제를 내세워 개입한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허가제로 사업권을 딴 소수 업체들만 정부가 쳐준 ‘울타리’ 안에서 독과점 사업을 운영하며 이것이 정치권의 포퓰리즘 법안의 빌미가 됐고, 최근 3년간 면세점업계의 대혼란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돌고 돌아 허가제로

국내 면세점산업은 1962년 시작됐다. 김포공항 출국장면세점이 설립되면서부터다. 1978년엔 관세법이 개정돼 시내면세점(보세판매장) 제도도 도입됐다. 관광객 유치와 외화벌이를 위해서였다. 정부는 이듬해 롯데면세점과 동화면세점을 국내 첫 시내면세점 사업자로 허가했다.

1984년 정부 면세점 정책은 ‘사실상 등록제’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면세점을 확대하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1989년에 이르러 시내면세점 29곳, 출국장면세점 4곳 등 모두 33곳의 면세점이 사업권을 받고 난립한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줄줄이 부도를 맞거나 폐업하면서 국내 면세점업계는 롯데와 신라의 양강 구도로 재편돼 갔다.

당시만 해도 면세점은 외국인보다 해외여행을 가는 내국인 중심의 영업을 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관세청은 2008년 1월 엉뚱하게 시내면세점 허가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뒷북 허가’가 초래한 재앙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한국 면세점산업은 일대 전기를 맞는다. 일본인과 중국인을 중심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2007년 2조6442억원에 머물던 국내 면세점 매출도 2012년 6조329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시장을 양분하던 롯데와 신라도 서울 시내면세점을 중심으로 막대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면세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산업으로 알려지자 서울 시내면세점을 추가 허용해 달라는 요구도 커져 갔다. 하지만 특혜 시비를 우려한 관세청은 신규 허가를 8년째 계속 미루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면세점은 특정 대기업에 주어진 특혜”라는 일부 정치권 주장이 갈수록 힘을 받는다. 2012년부터 불어닥친 ‘경제민주화’ 열풍과 맞물려 홍 의원이 관세법 개정 작업을 추진한 것도 이런 논리에 기반했다.

대형 면세점 관계자는 “2008~2012년 면세점 급성장기에 관세청이 허가제 집착을 버리고 원하는 업체들의 신규 시장 진입을 과감하게 허용했다면 2013년 문제의 관세법 개정도, 이로 인한 시장 혼란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뒤늦게 사업권 기간을 10년으로 다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사업자들의 자유로운 시장 진출입을 터줘 수요·공급에 근거해 시장이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