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넘길 때 돈 받는 '헤비테일' 방식 확대…유동성 위기 '주범'
"수주 가뭄으로 관행 거스르기 어려울 것"

국내 대형 조선 3사의 차입금 규모가 불리한 수주계약 방식 탓에 2010년 이후 5년 새 2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각사의 사업보고서와 금융권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현대미포·현대삼호 포함)의 차입금 규모는 2010년 말 10조 원에서 작년 말 23조9천억 원으로 5년 새 14조 원 가까이 불었다.

매년 2조∼3조 원 규모로 차입금이 늘어왔던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이 기간 2조5천억 원에서 7조9천억 원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고, 삼성중공업은 2조4천억 원에서 4조7천억 원으로, 현대중공업은 5조2천억 원에서 11조4천억 원으로 각각 두 배 수준으로 커졌다.

금융권과 조선업계는 이같은 차입금 규모 확대의 가장 큰 원인이 조선사에 불리해진 수주계약 관행 변화에 있다고 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선박 건조 단계에 따라 선주로부터 선박대금을 균등히 지급받는 계약이 주를 이뤘다.

글로벌 해운업 호황으로 선박 발주가 줄을 이었기 때문에 조선 3사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 및 조선업 동반 침체로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는 시점에 대금의 절반 이상을 지급받는 계약(헤비테일 방식)이 보편화됐다.

조선사가 배를 건조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선주로부터 중간중간 충분한 자금이 들어오지 않다 보니 운영자금이 부족하게 돼 차입금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선주가 중간에 발주를 취소하면 재무적인 부담이 훨씬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우조선해양이 자금난에 처해 채권단으로부터 4조원대의 대규모 자금을 공급받게 된 것도 부실 경영 외에 이런 불리한 수주 방식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헤비테일 방식은 조선사의 금융 의존도를 높일 뿐 아니라 회계 처리에서도 불투명성을 야기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도 이같은 헤비테일 수주 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 행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형 조선사의 과당경쟁 방지를 위해 과도한 헤비테일 방식의 수주에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수금환급보증이란 선수금을 지급한 선주가 배를 제대로 인도받지 못할 경우 선수금을 돌려받기 위해 드는 일종의 보험이다.

다만 헤비테일 방식이 국제 관행처럼 굳어져 바뀌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채권은행 여신심사 담당자는 "올해 들어 수주가뭄이 심화되다 보니 작은 선박 발주 하나에도 전 세계 조선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상황"이라며 "헤비테일 방식을 거부하면 사실상 수주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