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여성 최초 쌍용차 판매왕 유지현씨…"티볼리가 내 인생 바꿨죠"
[ 안혜원 기자 ] 고등학교 3학년, 열 아홉 꿈 많던 소녀 유지현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밤낮으로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차마 등록금 얘기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학에 가는 대신 취업을 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왕이면 큰 회사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수줍음 많고 얌전하던 소녀는 그렇게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다. 자동차 회사는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 국내 완성차 업계 첫 여성 영업왕

입사 20여년이 지나 고졸 소녀는 회사 최초의 여성 판매왕이 됐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 중에서도 처음이다. 영업 사원으로 일을 시작한 지는 불과 3년 만이었다. 유지현 쌍용자동차 화곡영업소 팀장(42·사진) 이야기다. 그는 쌍용차에서 지난해 290여대에 달하는 판매량을 올리며 최우수 영업사원이 됐다. 지난 4일 그를 만났다.

유 팀장과 대화를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직전까지 차를 팔았다. 고객과의 계약을 마치고 헐레벌떡 자리로 돌아온 그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주의라서요. 특히 고객과의 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유 팀장이 직접 업무를 보는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고객 명단을 정리한 서류가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는 "저것은 전체 서류의 반도 안되는 분량"이라며 "사무실을 정리하느라 일부는 보관 장소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3년 관리직 사원으로 처음 입사했다. 주로 회계 업무를 봤다. 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영업사원 교육 업무를 맡게 되면서였다.

"영업은 고객의 마음을 얻어야 가능한 것이죠. 남성들만큼 공격적인 판매를 할 순 없겠지만 고객의 생각을 세심하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제가 낫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업사원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영업사원에 대한 편견이 있었죠. 가족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저를 자랑스러워했어요. 여자가 발로 뛰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했고요.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한 다음에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혼 후에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흔이 목전에 다가왔다.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마흔을 한달 앞둔 2013년 11월 39세, 그는 영업사원이 됐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한 건의 계약을 올리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낙담하던 그에게 당시 일을 가르쳐주던 상사가 물었다. "네가 고객이라면 너에게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냐"는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를 팔아야겠다는 욕심이 앞서 고객을 재촉하기만 했지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사무실 벽면 한가운데 붙어있던 영업 실적을 기록한 칠판부터 치웠다. 조급한 마음을 버렸다. 고객과의 상담에 무조권 2시간 이상 할애하며 대화했다. 차를 구매하지 않는 고객에게도 한달에 두세 번씩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친구, 자식, 시댁 얘기 등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차는 유 팀장에게 사야지"라는 말을 하는 고객이 늘어났다. 한 명의 고객이 두 명의 고객을, 두 명의 고객이 네 명의 고객을 데리고 왔다. 그는 "고객 한 분이 단 한 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죠. 한 분께서 열 분을 소개해주실 때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판매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사진= 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사진= 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 티볼리 출시 직후 하루 50~60명 고객 매장 찾아

작년 1월 티볼리가 출시되면서 판매량은 더욱 증가했다. 무겁고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쌍용차 영업점에는 주로 남성 고객이 많이 찾아왔다. 하지만 티볼리가 출시되자 여성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여성 고객들은 여성 사원인 유 팀장을 편하게 여겼다. 유 팀장은 더욱 바빠졌다.

"티볼리가 출시되던 첫 달에는 하루에 50~60명의 손님이 찾아왔어요. 쉬는 날도 없이 한달 내내 일했습니다."

출시 초창기에 티볼리는 찾는 고객은 주로 20~30대였다. 인터넷을 통해 입소문이 난 덕분이었다. "저희 회사는 규모가 큰 경쟁업체들 만큼 광고를 많이 할 여유가 없었어요. TV 광고도 거의 하지 않았죠. 인터넷을 많이 접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 다였어요."

그런데 광고를 많이 내보내지 않자 오히려 매장을 직접 찾는 손님이 늘었다. "TV, 신문 광고가 많이 나오지 않으니 차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매장을 방문하는 것 뿐이었죠. 고객이 차량의 우수성을 직접 눈으로 보면 구매욕이 생기고, 그렇게 판매가 폭발적으로 이뤄졌죠. 또 그 고객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면서 중장년층 구매 수요도 늘어났고요."

최근 티볼리 에어를 출시하며 쌍용차는 또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티볼리 에어를 출시 하기 전에는 회사 내 이견도 많았다. "영업 사원들 간에도 걱정이 많았어요. 7인승으로 나올 줄 알았던 티볼리 에어가 5인승으로 출시되면서 오히려 기존의 티볼리 고객을 뺐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이 나왔죠."

"하지만 웬걸요. 오히려 고객이 늘었습니다. 특히 남성 고객이 많이 찾아요. 티볼리보다는 조금 큰 모델을 원하시던 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가 생겼어요." 그 순간 유 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고객 전화였다. 그는 말했다. "티볼리 출시 직후였던 2015년 1월로 돌아간 것 같아요. 티볼리 에어 열풍 때문에요."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