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과 너무 비교되는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의지
자율협약(채권단관리)을 신청한 한진해운이 2일 자구안을 발표했다. 임원의 급여 반납이 골자다. 반납 폭은 사장 50%, 전무급 이상 30%, 상무급 20% 등이다. 한진해운은 인건비 10%를 절감하고 직원 복리후생비도 30~100% 삭감하기로 했다.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은 이날 임원회의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며 해운사의 생존 기반인 화주, 하역 운송 거래사, 얼라이언스(해운동맹) 등의 신뢰를 되찾겠다고 강조했다. 한진해운은 4일 채권단에 의해 자율협약 개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한진해운의 자구안이 다른 구조조정 기업에 비해 강도가 약하고 더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발표한 자구안에는 임원 수 감축 등 인력 구조조정 내용이 빠졌다. 임원 급여도 삭감이 아니라 반납이었다. 자율협약(채권단 관리)을 신청할 때부터 금융위원회 산업은행과 불협화음을 내는 등 채권단보다 오너의 눈치만 살폈다는 평가다.

한진해운은 비용 절감의 핵심인 용선료 협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안을 최대 채권자인 산업은행에 제시하지 않았다. 채권단이 요구해 온 용선료 인하폭도 당초 연간 2000억원이었으나 한진해운은 훨씬 못 미치는 목표치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은 당초 용선료를 연말까지로 인하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채권단의 요구로 3개월 안에 마치기로 합의했다. 반면 현대상선은 외국 선주별로 구체적인 감축 금액을 제시했고 1~2곳을 제외하곤 사실상 합의를 앞두고 있다.

한진해운은 그동안 현대상선보다 우량회사로 평가받았다. 작년 기준 부채비율도 816.6%로 현대상선(1565.2%)의 절반에 가깝다. 영업이익도 2년 연속 흑자지만 현대상선은 5년간 손실을 기록했다. 올초에는 일부 화주에게 “현대상선이 문을 닫을 수 있으니 우리와 일하자”며 반사이익을 노린 과감한 마케팅도 펼쳤다. 한진해운은 작년 10월 정부로부터 현대상선과 합병을 권고 받았으나 거절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상선에 뒤처져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오너(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절박함이나 ‘벼랑 끝’ 용선료 인하 협상, 채권단과 협력 등이 한진해운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대부분의 부실을 전 오너나 경영진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데 바쁘다. 금융위가 초기에 몇 푼 안되는 돈이라도 오너의 사재 출연을 강력히 요구했던 이유는 뭘까. 오너의 말이 아니면 꿈쩍도 하지않는 한진그룹의 특성 때문이었다. 약한 위기의식으로는 채권단과 남은 경영정상화 작업도 가시밭길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정부 주도의 국적 선사 재편 과정에서 현대상선에 주도권을 뺏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국내 1위 해운사다운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안대규 산업부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