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은 총재 "구조조정서 필요한 역할 적극 수행할 것"
유일호·이주열 '프랑크푸르트'서 양적완화 협의 여부 주목

정부의 '한국형 양적완화' 참여 압박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던 한국은행이 2일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정부와 한은의 갈등이 봉합국면에 접어들지 주목된다.

이는 한시가 시급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놓고 재정·통화 당국이 서로 책임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난을 의식한 것으로,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독일 출장길에 만나 적극적인 합의 방안을 도출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일 오전 한은 본관에서 집행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국은행은 기업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이제 기업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므로 한은의 역할 수행 방안에 대해 다시 한 번 철저히 점검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특히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에 참여해 관계기관과 추진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달라"면서 "이와 관련해 대외발언을 할 때는 오해가 유발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것이 없으며 갈등을 빚는 것으로 비치는 오해를 줄이려는 발언일 뿐 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은이 나설 상황은 아니다"(이주열 총재),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과거 발언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달라진 입장이다.

이는 정부와 한은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외부의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해운·조선 등 부실업종의 상황이 심각하고 이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는데 정부와 한은이 책임을 전가하며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적자에 대한 비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한은도 물가와 통화정책에 책임이 있는 만큼 궂은일을 떠안지 않으려는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또 해운·조선 등 한계상황에 처한 업종의 구조조정이 한시가 시급한데 정부와 통화 당국이 서로 책임만 전가하며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점도 한은엔 큰 부담이다.

이런 식으로 당국이 책임을 떠넘기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 더 큰 문제로 비화할 경우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윤면식 부총재보의 발언은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한데 이것이 대외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도 이날 출입기자단 월례 간담회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함께하고 하고 있다"며 갈등설을 일축했다.

최 차관은 "한은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앙은행으로서 기능과 목적에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데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업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은 4일부터 시작할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TF)'에서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1일 한 방송에 출연해 "구조조정 재원 마련 방안은 재정과 통화정책 수단의 조합을 생각해보고 있다"면서 "딱 하나의 방법을 쓰기보다는 폴리시 믹스(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 조합)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이 한 발씩 양보해 서로 부담을 적정하게 분담하는 차원에서 타협안을 도출하자는 제안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일호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는 3일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해결방안이 논의될지 주목된다.

유일호 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현지에서 만나 구조조정 재원 조달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고 협력을 모색할 방안을 도출해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법 개정 없이 가능한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나 산은 발행 코코본드 (조건부자본증권) 매입, 산은에 대한 정부의 공기업주식 현물출자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구조조정 재원조달 방안과 관련한 일체의 모든 논의는 협의체에서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면서 "건설적인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