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조선·해운 구조조정] 다섯 가지 난제 앞에 선 구조조정 사령탑 임종룡
임종룡 금융위원장(사진)은 지난달 29일 주요 언론사 경제·금융부장단 간담회에서 ‘기업 구조조정 사령탑’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정부가 왜 이렇게 (기업 구조조정을) 약하게 하느냐는 지적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1) “속도 더디다”는 여론

임 위원장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더 세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 주도의 고강도 ‘빅딜’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과거 빅딜도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용경색(크레디트 크런치)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은행들이 멀쩡한 기업에 대한 자금까지 회수하려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기업을 잘 모른다”고도 했다. 그는 “성공 사례로 꼽히는 미국 GM과 크라이슬러 구조조정은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음에도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정부 개입이 구조조정을 망칠 수 있다는 얘기다.

(2) 커지는 통상마찰도 우려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어려운 이유로 ‘통상마찰 우려’도 꼽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조(兆) 단위 부실을 낸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를 두고 국제사회에서 ‘부당하게 정부 보조금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는 “(대우조선 유동성 지원과 관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달 23일께 회의를 열 예정”이라며 “2002년 옛 현대전자 유동성 지원과 관련해 상계관세를 부과받은 전례를 (정부로선)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3) 대우조선 빅딜 없다지만 …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와 관련,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조조정을 통해 빅3를 1~2개로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업부 빅딜 등을 통한 설비 감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시장에서도 나왔다. 임 위원장은 그러나 “조선 빅3에 투자한 외국인 채권자, 주주 등의 의사에 반하는 빅딜은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또 “대우조선이 국내 조선사 중 수주잔량 1위인데, 대우조선을 없애면 지금까지 수주한 것을 전부 물어줘야 한다”며 “대우조선은 5만명의 직원이 있고 1200여개 협력사를 두고 있다”고 현실적 어려움도 털어놨다.

(4) 해운사 구조조정 딜레마

임 위원장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구조조정에 대해선 “협박과 읍소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했다. 해외 선주사와의 용선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협상 실패 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회사를 살릴 테니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 끼워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현대상선은 이달 중순까지 용선료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보다 용선이 많아 협상이 훨씬 어렵다”고 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중 한 곳만 살린다면 어느 회사를 택해야 하는지도 고민스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5) 꼬이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

한국은행은 지난달 29일 정부의 국책은행 자본 확충 요구에 대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놨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에 자본 확충을 해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선·해운 여신의 70%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에 몰려 있는 만큼 한은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한은 출자와 별개로 산업은행이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을 발행하면 이를 한은이 사주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이태명/김일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