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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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빵. 우리는 지금 '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엔 빵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접 빵집을 차리겠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빵집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떤 빵집을 어떻게 차려야 할 지 궁금한 게 많다. 셰프만의 개성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전국 방방곳곳 '작은 빵집' 사장님들의 성공 방정식. [노정동의 빵집이야기]에서 그 성공 법칙을 소개한다.

반영재 더벨로 사장(35·사진)은 농부다. 빵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빵사보다는 국산밀을 직접 재배하고 종자 개량화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농사꾼에 가깝다. 2년 전에는 고향인 충북 음성에 호밀밭을 꾸렸다. 주말이면 내려가 호밀들을 돌본다. 이 젊은 사장은 빵집 운영은 대부분 직원들에게 맡기고 하루종일 빵 공장에 들어가 앉아 어떻게 하면 국산밀로 더 나은 빵맛을 낼까 실험을 거듭한다.

국산밀로만 빵을 만드는 빵집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힌다. 가장 큰 이유는 국산밀 공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벼농사가 중심인 우리나라는 남도지방 일부에서 이모작 형태로 밀을 재배한다. 빵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선 일관된 품질의 밀을 지속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국산밀 생산량은 턱 없이 부족하다. 따뜻한 날씨에서 잘 자라는 특성 탓에 우리나라 지형과 기후에 적합하지 않아 종자 개량화도 어렵다. 해외에서 밀 씨앗을 들여와 우리나라 토양에 심는다고 해서 같은 밀이 나오지 않는다. 토질과 기후가 다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맛이다. 글루텐 함량이 많은 수입밀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쫄깃한 식감을 내는 데 유리하다. 밀 다양성에서도 앞선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5대 밀 생산국은 중국 인도 러시아 미국 프랑스다. 이어 호주 독일도 주요 밀 생산국이다. 이들이 주로 생산하는 것은 빵의 주재료로 쓰이는 백밀과 통밀이다. 둘의 차이는 제분과정에서 껍질을 얼만큼 벗겨내느냐다. 백밀은 부드러운 반면 통밀은 일부 껍질에 포함된 배아를 남겨놓기 때문에 영양가가 높다. 호밀은 이들과 아예 다른 종자다. 우리나라에선 이들 종자 자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재배도 어렵고 빵을 만들기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진 우리밀에 그가 이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뭘까.

“아버지가 농부였어요. 보고 자라면서 영향을 받았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빵을 배웠지만 제게 빵은 매개체에 불과해요. 목표는 저희 말고도 더 많은 빵집에서 국산밀을 쓰게 하는 거예요. 국산밀 수요가 많아야 더 많은 농가에서 밀 농사에 뛰어들 수 있고요. 수요를 늘리기 위해선 우리밀로 만든 빵이 맛있어야 겠지요. 그 부분이 빵 기술자인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산밀로 빵을 만들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수입밀은 우선 빵과 호환성이 좋다. 수입밀로 빵을 만들면 빵의 특성 즉 ‘잘 부풀고’ ‘식감이 쫄깃한’ 빵을 구현하기가 쉽다. 반면 국산밀은 정반대다. 종자 차이다. 주요 밀 생산국에선 이미 오랫동안 밀을 재배했기 때문에 특화된 토질이 존재한다. 특화된 토질에 종자를 심으면 생산량도 더 늘어난다. 생산 시스템도 최적화 돼 있다.

“예를 들어 국내산 호밀은 시중에 거의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려워요. 최근에 전남 구례에서 어렵게 호밀 종자를 구했어요. 지역에서 소규모로 제분소를 하시는 분들을 통해 그나마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종자를 잘 심어서 5년 정도 개량화에만 힘쓸 생각입니다.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선 생산량이 중요하거든요.”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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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부분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반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우선 더벨로에서 만드는 모든 빵을 저온발효 과정을 거쳐 생산한다. 보통 빵을 위한 밀가루 반죽은 27~32도 사이에서 1차 발효 과정을 진행한다. 습도도 50~80도가 일반적이다. 그는 발효 온도를 5도까지 낮춘다. 발효되는 시간이 느려 생산량이 적을 순 있지만 빵 맛이 개선된다는 게 그의 얘기다.

“발효 중에 밀가루가 물을 계속 흡수해요. 밀가루 안에 있는 글루텐은 단백질인데 물이 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전분 구조가 서서히 붕괴됩니다. 이렇게 되면 수입밀처럼 빵이 잘 구워져요. 물을 많이 흡수할수록 특유의 식감도 살아납니다. 먹었을 때 소화도 잘 되고요.”

더벨로의 매출은 대부분 레스토랑이나 카페 납품을 통해 나온다. 일반 소비자들이 사가는 것은 20%에 불과하다. 점점 이들 매장에서 빵 주문 수량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식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점점 수입밀의 가격이 올라요. 수요가 그쪽으로 쏠리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생각하시는 소비자들은 또 방부 처리하지 않은 토종밀을 찾기도 하시고요. 대량 생산되는 빵이 아닌 다양한 빵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게 분명히 느껴져요. 저는 우리밀로 만든 맛있는 빵을 내놓기만 하면 됩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