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산은·수은 지원, 어떤 방식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한국은행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지원 논의가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며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은 미국 등 선진국의 '무차별적인 돈 풀기'가 아닌 '선별적 양적완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관계기관이 협의해 구조조정 재원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이날 발언은 최근 새누리당과 정부 입장과 견줘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돈풀기 방안의 하나로 인식되던 '한국판 양적완화'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선제적 자금확충 방안임을 분명히 하면서 '하느냐, 마느냐'를 따질 단계가 아니라, 어떤 것이 최적안이냐를 판단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틀 전인 지난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도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각 부처 장관들이 모인 국무회의에서 국책은행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한층 의미가 크다.

야당 등에서 제기되는 양적완화에 대한 비판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더불어민주당은 양적완화는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것을 의식해 한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박 대통령은 국책은행 지원과 관련해 '최적의 방안'을 지시하면서 구체적인 방식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의 정책 수단이라는 점에서 한은의 역할에 시선이 쏠린다.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은 한은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에 출자하거나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청와대 관계자는 27일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을 인수하는 방법이 있고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직접 출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는 수출입은행법에 근거 조항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년 말 현재 한국은행의 출자금은 1조1천650억원으로 수출입은행 납입자본금의 13.1%이다.

이는 정부(73.9%)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한국은행은 수출입은행이 설립된 1976년 200억원을 시작으로 2000년까지 모두 12차례 출자를 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천억원을 출자했고 2000년에도 2천억원을 추가로 출자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중심에 선 산업은행에 대한 지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현재 한국은행법은 한은이 영리기업의 소유나 운영 참가를 금지하고 있는 만큼 산업은행에 출자하려면 한은법이나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 한은이 산은의 후순위채를 인수하려고 해도 현행법상 정부 보증을 거쳐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법 개정 작업에서 야당을 설득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발권력 논란도 증폭될 수 있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 모두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동안 한은이 특혜 시비 등을 불러올 수 있는 발급력 동원을 자제하고 위기 상황에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당장 부실이 커졌다고 인력 구조조정, 사재 출연, 자금지원 이런 수순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면 내적으로 부실을 더 키우는 꼴이 된다"며 "구조조정 재원조달 방법에서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은 최후 수단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도 법적 테두리에서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있고 발권력 동원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정치권에 의해 흔들린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지원은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