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재정정책 의존한 내수 촉진→기업 구조조정·신산업 투자로
전문가들 "경기 보완 위해 통화·재정정책도 확장적으로 펴야"


28일 정부가 발표한 산업개혁 방안은 정부 경제정책의 무게 중심이 부동산시장·소비 활성화를 통한 '수요 진작'에서 구조조정과 투자 확대를 통한 '공급 관리'로 옮겨졌다는 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통화·재정정책을 이용한 내수 진작에 주력했던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 기조가 유일호 경제팀에선 상당 부분 바뀌게 됐다.

'2%대 저성장'을 탈출하려면 당장은 고통(수요 위축)이 있더라도 주력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새로 성장하는 산업에 돈이 흘러들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 수요 확대 주력했지만…2%대 저성장 지속 우려

지금까지 정부는 '수요 확대'에 초점을 둔 경기 부양책을 펴왔다.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와 함께 2014년 8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2.50%에서 2.25%로 인하됐다.

금리는 세 차례 더 인하돼 현재 연 1.50%다.

지난해 정부는 지출을 5.7%(예산안 기준) 대폭 늘린 '슈퍼 예산'을 짠 데 이어 11조6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재정 지출을 확대했다.

연말에는 소비 촉진을 위해 자동차·대형가전제품 개별소비세 인하도 단행했다.

정부의 이런 정책으로 성장률 급락이라는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올해 1분기 성장률만 해도 0.4%(전기비)로 2개 분기 연속 둔화됐다.

정부가 올해 3.1%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한국은행(2.8%), 국제통화기금(2.7%)의 전망치는 이미 2%대로 떨어졌다.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2% 초반대의 전망치까지 내놓고 있다.

중국·미국 성장세가 둔화하는 등 세계경제 회복이 예상했던 것보다 지체돼 수출 부진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가계부채, 과잉재고·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도 소비·재정을 매개로 한 수요 촉진 정책만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재부는 이날 내놓은 '경제여건 평가 및 정책대응 방향'에서 "소비는 고령화 등 제약요인으로 추세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며 "재정의 경우 주요국과 비교해 여력은 충분하지만 위축된 민간부문의 활력을 보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 신산업육성·구조조정으로 '총공급 관리'

이에 정부는 기존의 정책 기조를 탈피해 '총공급 관리'로 정책 초점을 옮기고 있다.

기재부는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구조개혁, 산업 경쟁력 제고 등 공급 측면의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환자에게 링거를 꼽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체질 자체를 확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공급 관리의 핵심은 신산업 육성과 기업 구조조정이다.

정부는 우선 스마트카·바이오·에너지신산업 등 앞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갈 새로운 산업 분야를 10개 정도로 추려 최고 수준의 세제 지원을 하기로 했다.

예산과 금융 지원도 뒤따른다.

상반기 중에 지원 대상이 되는 신산업이 지정된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세법 관련 시행령을 고쳐 10월부터 신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약이나 인공지능 등 투자 위험이 큰 분야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공공부문이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분담하는 '신산업 육성 펀드'도 1조원 규모로 출시한다.

한계기업과 취약업종 구조조정에는 속도를 내고, 정상기업의 사업 재편도 세제를 통해 지원하기로 했다.

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 등 5대 취약업종 구조조정으로 부실한 부분을 털어내고 융복합 신산업,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산업 포트폴리오를 바꿔놓겠다는 계획이다.

◇ 전문가들 "구조조정과 결합된 경기부양책 필요"
정부가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고용 축소, 투자 위축, 소비 감소 등으로 성장세가 떨어질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총공급 정책과 경기 하강 압력을 완충할 수 있는 총수요 정책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시기일수록 적극적이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는 외환위기만 없을 뿐이지 1997년 위기 때와 사실상 동일하거나 더 어려운 상황이라는 인식을 갖고 기업 구조조정과 결합된 경기부양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정리해고로) 이동하는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조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도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성장률의 급격한 하락을 막으려면 통화·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