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용선료 협상 연말까지 시간달라"
한진해운은 외국 선주사와의 용선료 인하 협상 시한이 올 연말까지 주어진다면 연간 용선료를 10~20%(1000억~2000억원) 정도 낮출 수 있다는 보완책을 산업은행에 제시할 예정이다. 한진해운은 또 용선료 인하 협상을 하면 외국 선주사가 정부 또는 산업은행의 보증을 요구할 것이란 의견을 산업은행에 전달하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27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산업은행의 자율협약 신청서 보완 요구에 한진해운이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제출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용선료 인하 협상과 관련해 한진해운은 시한을 못박지 않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시한을 정한다면 올 연말까지로 정해주길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진해운은 지난 25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채권단 자율협약(채권단 관리)을 신청했다. 산업은행은 신청서 미비를 이유로 보완을 요구했다.

한진해운이 요구받은 보완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분기별로 작성된 단기자금 상황을 월별로 상세히 적고 용도별로도 구체화하라고 요구했다. 다음으로 용선료 협상은 선주사별로 언제, 어떻게 벌일지 구체화하라는 것이다.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단기자금 관련 보완은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지만 용선료 인하 협상 방안에 대해선 한진해운이 생각하고 있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인하 협상 시한을 못박는 것이 쉽지 않고 효과도 미미할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그리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18개 외국 선주와 용선료 인하 협상을 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용선료 인하 협상을 벌이고 있는 현대상선 선주와 겹친다.

선주가 같으면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 협상결과와 같은 수준에서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게 한진해운의 생각이다. 다른 선주는 독자적으로 협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진해운은 보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이와 관련, “현대상선은 시한을 못박고 협상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벼랑 끝 전술”이라며 “이 전술이 통할지, 그렇게 시행될 때 의미 있는 용선료 인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한진해운은 외국 선주의 절반 이상이 펀드 회사이기 때문에 시한을 정하면 협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펀드는 용선료 인하 및 용선료 인하폭에 대해 펀드 출자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 자체가 어렵고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고 한진해운은 보고 있다.

한진해운이 예상한 용선료 인하 협상의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용선료 지급을 유예하는 것, 용선 기간을 늘리는 것, 용선료 자체를 인하하는 것 등이다. 이 중 용선료를 내리는 것은 정찰제 가게에서 물건 값을 깎는 것처럼 어렵다는 게 한진해운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용선료 인하 협상의 포인트는 주로 지급 유예와 용선 기간 장기화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고 한진해운은 전했다.

용선료 자체를 낮추고자 할 때는 외국 선주가 반대급부로 한진해운 주식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진해운은 판단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주식을 지급한다면 한진해운이 주식회사로 지속될 것이란 비전이 필요할 것”이라며 “외국 선주들은 벌써 이 대목에 대해 정부나 산업은행의 보증을 요구하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는 “어려움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시한이 올 연말까지 주어진다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연간 용선료의 10~20% 정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은 업황이 개선되고 있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기존 주식 감자, 부채 탕감, 출자전환 등의 조치를 취해주면 한진해운이 생존 가능하다고 산업은행에 전하고 있다.

해운 운임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4월부터 큰 폭으로 반등하고 있다는 게 한진해운의 분석이다.

아시아지역 운임이 이달 들어 2배 뛰었으며, 유럽 운임은 TEU(1TEU=6m짜리 컨테이너 1개)당 3월 300달러에서 4월 500달러 이상으로 상승했으며 5월엔 1일부터 600달러 이상으로 인상되는 게 확정됐다고 한진해운은 전했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 해운업 자체가 최악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유럽 노선은 TEU당 운임이 2000달러에서 지난해 12월 2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부채를 3조원 줄여 5조원까지 끌어내렸지만 여전히 많은 데다 소폭의 영업이익마저 1000억원대 영업손실로 돌아선 것이 자율협약 신청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선 한진해운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아무 협의 없이 느닷없이 자율협약을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100% 와전된 것”이라며 “이사회 결의 시점, 신청서 제출 시점 등까지도 산업은행과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박준동/안대규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