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경영진이 내세운 올해 최우선 목표는 흑자전환이었다. 2013년 4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9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낸 탓이다. 26일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연간 기준 흑자전환을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지만,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 등 최고경영자(CEO)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긴급 담화문을 내고 “생존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현대중공업은 임원 약 30%를 줄이겠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임원들이 먼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차원에서다.
"일감 사라지는 더 큰 위기 온다" 사즉생 호소한 현대중공업 CEO
◆자회사가 이끈 흑자전환

현대중공업은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3252억원을 기록했다고 26일 공시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분기 279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9분기 동안 총 4조8776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전환의 일등공신은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였다. 현대오일뱅크는 176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4분기(1551억원)에 비해 14%가량 증가했다. 계열사를 제외한 별도 기준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 규모는 1013억원에 그쳤다. 현대중공업의 1분기 순이익도 2445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9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 등 계열사 지분법 평가에 따른 순이익이 2086억원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본업인 조선·해양이 아니라 비조선 사업부문이 실적개선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해양플랜트를 제작하는 해양부문과 육상플랜트를 담당하는 플랜트부문은 적자를 이어갔다. 대규모 적자를 불러온 주범인 플랜트 분야의 실적회복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의 1분기 흑자는 ‘수주절벽 위 흑자’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6억달러(약 6800억원)어치 선박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 수준이다.

◆CEO들 “일자리 없어진다” 우려

최 회장과 권 사장 등 현대중공업그룹 내 조선 계열사 대표들이 이날 담화문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우려를 쏟아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흑자를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시시각각 우리에게 다가오는 더 큰 위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일감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올해 우리는 5척의 선박밖에 수주하지 못해 수주 목표치를 대폭 낮춰야 할 상황에 처했다”며 “설계부문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도크가 비는 것은 현실화됐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 CEO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 일자리는 없어진다”며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경영진은 비용절감을 위한 여러 방안을 내놓았다. 우선 임원 30%를 감축한다. 지난달 말 기준 상무보 이상 임원은 220명인데, 이 가운데 60명 이상을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에도 구조조정을 하면서 임원 감축부터 시작했다. 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시행하기 전에 임원이 먼저 책임져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직원에 대해선 휴일근무와 매일 오후 5~6시에 하던 1시간 연장근로를 없앨 계획이다. 불가피하게 연장근로를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사업부문 대표가 직접 결재하도록 했다. 임직원이 연월차를 모두 소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도 추가 경영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최고경영진이 이처럼 호소에 나선 것은 노동조합의 무리한 요구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 회사 노조는 조합원 기본급 9만6712원 인상, 성과급 250% 고정, 사외이사 노조 추천권 부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오는 29일 서울 상경 투쟁도 준비 중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