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량식 참석한 조양호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6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상량식에 참석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진해운이 전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함에 따라 조 회장은 한진해운 경영권을 내놨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상량식 참석한 조양호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6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상량식에 참석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진해운이 전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함에 따라 조 회장은 한진해운 경영권을 내놨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기업구조조정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긴박’ ‘비상’이란 표현을 수차례 썼다.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구조조정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임을 강조한 것이다.

임 위원장은 구조조정 대책의 상당 부분을 해운업종에 할애했다. 지난달 말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도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해운업 구조조정이 5대 취약업종 가운데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5월 중순까지 용선료 협상이 안되면 현대상선의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얘기도 꺼냈다. 시장에선 ‘정부가 두 해운사 중 한 곳은 살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두 곳 모두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달 내 용선료 협상 마쳐라”

임 위원장이 이날 밝힌 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의 골자는 ‘해외 선주사 압박→용선료 협상 조속 타결’이다.

[해운산업 구조조정] "양대 해운사 모두 포기할 수도"…정부 '최후 카드'까지 꺼냈다
현대상선은 지난 2월2일 해외 선주사 22곳과 용선료 협상을 시작했다.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연간 용선료의 최대 30%를 깎는 게 목표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협상시한을 당초 이달 말로 정했다. 하지만 80여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타결 소식은 전해오지 않고 있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이 실패하면, 한진해운의 용선료 인하 협상도 어려워진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임 위원장은 이 때문에 해외 선주사들에 “5월 중순까지 용선료 협상에 응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용선료를 낮추지 않으면 현대상선을 법정관리에 넣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용선료를 단 한 푼도 못 받을 것이란 압박이다.

채권단은 이르면 다음주 한진해운에 대한 자율협약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자율협약이 시작되면 한진해운도 용선료 인하에 나서야 한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배를 임차한 22개 선주사 가운데 20곳 정도가 용선료 인하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2곳은 채권단의 지급보증 등 추가 지원을 요구하면서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두 해운사 모두 포기할 수도”

용선료 협상과 별개로 이날 정부가 내놓은 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에서 주목할 것은 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하겠다는 대목이다.

임 위원장은 “양대 해운사 정상화 방안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비상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운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비상계획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상계획은 말 그대로 현대상선,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회생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두 해운사가 없어지면 국내 기업의 수출물동량을 해외 선사 등으로 돌려 처리하는 계획을 짜겠다는 의미”라며 “조만간 해양수산부를 통해 검토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시장에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합병설이 많이 제기됐다. 정부가 두 해운사를 하나로 합쳐 최소한 한 곳은 살릴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임 위원장이 밝힌 컨틴전시 플랜은 정부가 경우에 따라서는 두 해운사를 모두 포기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부는 부채 조정과는 별도로 현대상선, 한진해운이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 잔류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머스크가 주도하는 ‘2M 얼라이언스’와 중국·프랑스 해운사가 주도하는 ‘오션얼라이언스’ 등을 중심으로 2~3개 얼라이언스로 재편돼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해수부·금융위·산업은행 등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두 해운사의 글로벌 해운동맹 잔류를 돕기로 했다.

이태명/김일규/안대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