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산은채·후순위채 등 자본확충 카드 만지작
범부처구조조정협의체 개최할 듯…추가 취약업종 등 논의 예상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그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금융기관이 직접적으로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업의 부실에 대한 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실업 해결 등을 위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적자 재정을 운용중이고 채권단에 포함된 산업 등 국책은행도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사정이 좋지 않다.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대량 실업 등을 조건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선적으로는 산업은행 등의 채권 발행으로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주에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으로 구성된 범부처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개최해 경기민감산업의 구조조정 현황을 점검하고 추가 취약업종 지정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 "추경, 대량 실업발생하면 생각해볼수도"

2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구조조정을 위한 추경 편성에 현재로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정 당국 관계자는 "현재 추경 편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구조조정으로 고용에 문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추경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검토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장래의 일에 대해 지금 한다, 안하다고 할 수 없다"면서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면 추경 말고 추경보다 더한 수단도 동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유 부총리는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추경에 대해 속단할 수 없다"면서 "(구조조정에 따른 대규모 실업이) 추경 요인이 된다면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대량 실업은 추경요건에 포함된다.

실제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조선업종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업황으로 1만5천명이 일자리를 잃은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 업황이 더 좋지 않아 1년 전보다 더 많은 인력이 감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당장 국내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이 3천명 이상의 직원을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 형태로 내보낼 예정이다.

이 회사가 수주한 해양플랜트 17기 중 9기가 인도되면 관련 협력업체 직원 1만 3천명 중 상당수도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당장은 아니지만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실업 등 부작용이 확산되면 정부가 하반기에 추경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재정을 확대 집행할 예정이어서 '재정절벽'을 막기 위해서는 하반기에 별도의 재정 보강이 필요할 수 있다.

◇ '탄창' 비어가는 국책은행

구조조정에서 역할을 해야 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상황도 좋지 않다.

'탄창'은 갈수록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경기 침체 여파로 여신 기업들의 건전성이 악화돼 대규모 충당금을 쌓았고 1998년 이후 최대인 1조8천95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산은은 최근 3년 사이에 2조7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은이 떠안은 부실채권(NPL)은 7조3천270억원에 이른다.

다른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도 연결기준으로 지난해 당기순익이 411억원에 그쳤다.

2014년의 853억원에서 반으로 줄었다.

수출입은행은 자기자본확충을 위해 지난해 정부로부터 1조1천300억원을 출자받았고 현재 산업은행과 5천억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논의 중이다.

국책은행의 상황이 당장 구조조정을 추진못할 정도는 아니다.

자금 외에 대출금 상환유예, 출자전환, 금리인하 등의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책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조선, 해운 등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국책은행으로서는 자본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이나 후순위채 발행을 통한 '실탄' 마련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후순위채는 보완자본으로 인정돼 자금을 조달하면서 자기자본비율도 높일 수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산업은행은 여신이 물려 있는 곳이 많으며, 정부는 세수가 부족하다"며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주체들이 이미 지쳐 있어 구조조정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다른 대안은…금융안정기금 활용 가능성도 제기

구조조정 자금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설치됐으나 아직 사용된 적이 없는 '금융안정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안정기금은 부실 판정을 받거나 부실 우려가 있어야만 투입할 수 있던 공적자금과 달리 정상적인 금융기관에 출자·대출·채무보증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기금은 2009년 6월 정책금융공사에 설치됐다가 현재 산업은행으로 이관됐으나, 설치 이후 금융기관이 이용을 꺼려 지원 실적은 전혀 없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든 취지가 현재 구조조정 이슈와 맞닿아 있다"며 "이미 통로는 만들어져 있고, 기금을 얼마나 조성할지 국회에서 동의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적극 고려해볼 방법"이라고 밝혔다.

윤창현 교수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기금도 조성하는 등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써야 한다"며 "다만 지금 진행하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돈이 어느 정도인지 적당한 추정치와 그에 따른 시나리오가 먼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여당의 '한국판 양적완화'는 힘들어졌다.

한국판 양적완화를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산금채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한은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최근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면이 돼 입법이 쉽지 않아졌다.

야당은 한국판 양적완화에 반대했다.

(서울·세종=연합뉴스)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