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채무 재조정 절차에 들어가면 국내 기업 영구채권(신종자본증권) 발행 사상 첫 투자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영구채를 사들인 대한항공 등 투자자가 심각한 손실을 입는 동시에 비우량 기업의 영구채권 발행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위기의 한국 해운업] 해운사 영구채 3900억 첫 원금손실?
21일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영구채 발행 잔액은 약 4000억원에 육박한다. 실적 부진으로 나빠진 부채비율 개선을 위해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다. 영구채권은 명목만기가 보통 30년으로 길지만 발행회사 선택에 따라 상환을 계속 미룰 수 있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한진해운은 2012년 말과 올 2월 각각 1960억원(작년 말 현재 발행잔액 1570억원)과 22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현대상선은 2012년 말 2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국내 비금융 기업 영구채 발행은 2012년 4월 개정상법 시행으로 기반이 마련된 뒤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 수단으로 널리 활용돼왔다. 두산인프라코어를 시작으로 포스코, SK텔레콤, 롯데쇼핑 등 우량 기업은 물론 비우량 기업도 금융기관 보증 등에 힘입어 꾸준히 투자자를 모았다.

모두 사모로 발행되며 대부분 기관투자가가 매입했다. 금융투자협회 종목별 투자자 내역 보고에 따르면 현대상선 영구채는 한 보험사가 인수했다. 한진해운 영구채는 수출입은행과 국내 증권사들도 일부 투자했으나, 전액 대한항공이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로 발행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영구채는 선순위 채권이지만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대로 채무 재조정이 이뤄지면 대한항공을 비롯한 투자자는 발행잔액 전부에 대한 손실분을 고스란히 떠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첫 손실이 현실화하면 국내 비우량 기업의 영구채 발행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그동안 보증 형태로 발행하던 영구채마저 더 이상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서기열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