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경기부양 '대증요법'보다 '근본적 처방' 강조
'배수진'치고 기업 구조조정…신산업에 세제·금융지원


정책팀 = 유일호 경제팀이 출범 100일 이후 중점 과제로 한국의 산업구조 개혁을 꺼내 든 것은 통화·재정정책을 이용한 경기부양책만으로는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3.1%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올해 2.7%, 내년 2.9%로 전망했다.

지난해(2.6%)부터 3년 연속 2%대 성장률에 머무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존 주력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동시에 새로운 성장산업에는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옮기기로 했다.

◇ 10대 품목 수출비중 80% 육박했는데…공급과잉·중국추격에 한계
최근 한국 경제의 저성장에는 세계경제 성장률 둔화도 영향을 미쳤지만, 우리 산업구조 자체가 한계에 부닥쳐 나온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버팀목이었던 수출이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산업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수출액은 8.2% 줄어 월간 수출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장 기간인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체 수출에서 IT·자동차·조선·철강 등 10대 주력 품목 비중은 2014년 78.1%로 2000년대 초반보다 10%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정부가 별도로 집계를 시작한 2006년부터 주력 수출 품목은 순서도 바뀌지 않고 공고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품목들이 공급 과잉과 중국의 추격 등으로 한계에 도달하면서 우리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인구 5천만의 개방형 경제인 한국으로선 내수시장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해도 수출이 부진하면 경제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 등 5대 취약업종 구조조정으로 부실한 부분을 털어내고, 신(新)산업을 지원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로 한 이유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100일을 앞두고 지난 19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4대 부문 개혁에 산업개혁을 더해 '4+1' 개혁을 하겠다"고 밝히면서 신산업에 대한 세제·재정 지원 계획을 밝혔다.

◇ '배수진'치고 기업 구조조정…신산업에 세제·금융지원
산업 구조개혁을 위해 정부가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한계기업 구조조정이다.

유 부총리는 "기업 구조조정을 좀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국민경제 영향이 큰 업종에 대해 관계부처들이 종합적으로 점검해 부실기업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으로, 정상기업은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으로 재편을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 부문의 협상이 지지부진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 지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현대상선에 대해서는 "정해진 (구조조정) 스케줄이 있어 한없이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현재 회생을 위해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선박 대여료) 인하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협상에 성공해 용선료를 낮춰야 채권단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실패하면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까지 가야 한다.

시장 관계자들은 유 부총리가 '배수진'을 쳤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현대상선을 지원할 뜻을 내비치면 해외 선주들과의 협상이 불리해지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없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냈다는 것이다.

유 부총리는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해선 "근로자 (실업) 문제 등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여러 가지로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과 동시에 정부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자율주행자동차 등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세제·금융지원도 예고했다.

신산업 투자를 늘려 낡은 산업구조를 바꿔놓겠다는 계획이다.

서비스업과 제조업 간 차별을 해소해 유망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데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정부의 이런 기조는 올해 재정 보강과 내년 예산 편성, 세제 개편 때 반영될 전망이다.

유 부총리는 "신산업 투자, 일자리 창출, 구조조정 지원 등에 방점을 둔 예산 편성을 하겠다"고 밝혔다.

◇ 선진국은 금융위기 직후 산업구조 재편 시작
우리나라에 앞서 주요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산업구조의 판을 새로 짜는 작업을 시작했다.

독일은 제조업 혁신 정책인 '인더스트리 4.0'을 2011년 시작했고 미국과 일본도 적극적으로 산업구조조정을 해왔다.

우리 정부도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산업구조 재편을 시도하고 있지만, 문제는 구조조정에는 반드시 비용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조선업의 경우 조선소 한곳이 문을 닫으면 지역 경제가 충격에 빠지고 대량 실업이 발생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력히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연말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기까지 8개월이 구조개혁을 위한 적기인데,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개혁 정책들이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영록 서울대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바뀐 세계 질서와 산업 질서 속에서 우리가 뒤처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정부가 규제 개혁과 산업구조 재편을 더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산업지원 정책의 경우 이전에도 정부가 비슷한 정책을 수차례 발표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는데, 이번에는 다를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 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의 주력 산업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기보다 새로운 산업이 커져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며 "미국의 경우 구글, 페이스북 등 새로운 기업이 커져 IT산업 비중이 높아진 것이지, 다른 사업이 움츠러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