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225지수가 3.4% 급락한 18일 일본 도쿄 시민들이 주가지수 전광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닛케이225지수가 3.4% 급락한 18일 일본 도쿄 시민들이 주가지수 전광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미국이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에 급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올 연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본 정부가 추가 양적 완화로 엔화를 더 풀더라도 엔화 강세 추세를 막을 수 없다는 관측이다.

사사키 도로 JP모간체이스 도쿄지점 시장조사본부장과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국제외환부 수석마켓이코노미스트는 한목소리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초래한 3년간의 엔저(低) 시대는 끝났다”며 “연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대 초반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사키 본부장과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금융전문지 J-머니지(誌)의 외환시장분석 부문에서 번갈아가며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일본에서는 최고 외환 전문가로 꼽힌다. 연초 대부분 전문가가 125~130엔까지 엔화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들은 반대로 엔화 강세를 전망해 주목받았다.
[급등하는 엔화가치] "3년 엔저시대 끝났다…엔화가치 연말 1달러=100엔까지 오를 것"
◆日 무역수지 개선 추세 진입

18일 도쿄 사무실에서 만난 일본은행 출신 사사키 본부장은 “연초 엔고(高)를 예상한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무역수지 개선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늘어나던 무역수지 적자가 2014년 사상 최대(10조4000억엔)를 기록한 뒤 지난해 6000억엔으로 줄어든 수치를 보면서 엔저 흐름이 막바지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신흥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끈 선진국 경제마저 삐걱거리면서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해진 글로벌 투자자금이 ‘엔화 사자’로 몰리면서 엔화 강세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엔고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 “달러 약세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횟수 전망이 4회에서 2회로 줄어드는 등 Fed가 금리 인상에 더욱 신중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2회가 1회로, 1회가 0회로 줄어들 것”이라며 그럴수록 달러 약세를 부채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기업 수익 유입 가속

사사키 본부장은 올 연말 103엔,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100엔까지 엔화 가치가 뛰어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사사키 본부장은 “무역수지 개선 외에 해외에 있는 일본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본격 유입돼 엔화 가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기업들은 지난 3년간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이익을 해외에 그대로 뒀지만 엔저에서 엔고로 흐름이 추세적으로 바뀌면 늦기 전에 갖고 들어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기업의 해외 수익이 미국에 10조엔, 중국에 5조엔가량 있다”며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위안화 약세 가능성도 엔화 자금의 중국 이탈을 촉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전문가는 최소한 내년 말까지는 엔화 강세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2005~2007년 엔저 이후 5년간 엔고가 이어지다 아베노믹스 이후 3년 이상 약세를 보였다”며 “과거 경험에서 보면 최소 2~3년은 엔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일 간 물가상승률 차이를 감안해 계산한 실질실효환율로는 현재 엔화 수준이 1970년대 초반 이후 가장 저평가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日 정부 시장 개입은 힘들 듯

사사키 본부장은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에는 “높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은행에서 시장 개입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 그는 “오는 5월26~27일 일본이 의장국인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에도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을 넘지 않으면 개입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은행 규정상 시장 개입에 대한 코멘트는 할 수 없다”며 “G20 성명서에도 과도한 변동 시 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과도한’은 해당국 정부만 판단할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두 전문가는 아베노믹스 초기와 지금 상황을 비교할 때 엔화정책을 보는 미·일 간 인식차가 분명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버락 오바마 정부는 아베노믹스 초기 엔화 약세·달러 강세에 비교적 관대했다”며 “당시 지나친 엔고 수준과 일본의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감안해 대규모 양적 완화로 엔저를 유도하는 정책을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사키 본부장은 “하지만 엔화가 저평가된 상황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점에서 두 전문가는 일본 중앙은행이 추가 양적 완화에 나서도 ‘약발’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추가 양적 완화가 예상되지만 환율의 큰 흐름은 미 Fed에 달려 있다”고 했다. “앞으로 엔화 흐름을 좌우하는 사람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나 아베 총리가 아니라 재닛 옐런 Fed 의장”이라고 주장했다.

◆금융·환율정책은 진통제일 뿐

사사키 본부장은 “아베노믹스는 시장과 금융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장은 실물경제를 비추는 ‘거울’에 불과해 시장을 아무리 띄우려고 해도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다시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그는 “금융·환율정책은 진통제일 뿐”이라며 “수술(경제 구조개혁)에 나서야 일본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