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세 장벽 없애라"…미국, 한국에 압력
미국 정부에서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없애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나왔다. 미국 정가에서 한국과의 무역적자 확대에 대한 불만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졌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14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해외 어디에도 없는 불합리한 규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항공기 유지보수와 안전점검 등 결과 공개 △신차 인도 전 수리이력 고지 △자동차 좌석 폭 등에 대한 규정 △전자결제업자 등록 의무 △클라우드컴퓨팅 설비 관련 규정 등 다섯 가지를 조속히 철폐해야 할 규제로 지적했다.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시장 3차 개방안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취지와 달리 미국계 로펌 진출에 제약을 가하는 한국 법무부의 원안이 그대로 통과됐다”며 “워싱턴에 한국이 FTA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한·미 FTA로 한국이 일방적 이득을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들이 그만큼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 규제 5가지 '지목'…통상마찰 우려

지난해부터 미국 정치권에서 한국과의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는 2011년 132억달러에서 지난해 283억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오린 해치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은 지난달 2일 안호영 주미대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려면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한국의 FTA 이행 수준이 TPP 가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지한파로 알려진 로버트 돌드 하원의원(공화당)조차 작년 6월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보낸 서한에서 오라클, 퀄컴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사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거론하며 “한국 정부가 한국 대기업에만 유리한 법 적용을 하고 있어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 정가에서 제기되는 한국과의 무역역조 시정 논의가 지난해 미 의회가 통과시킨 ‘환율조작국 제재 법안’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것도 한국 정부에는 부담이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미 무역흑자 비중이 큰 일본, 중국, 대만 등과 함께 유력한 제재 대상국으로 언급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달 중순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을 비공개 방문하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번 미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 “미국 측(USTR)과 한·미 FTA 이행위원회 등을 통해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