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發) 공급과잉이 세계 철강업계를 흔들고 있다. 생산량을 대폭 늘린 중국 업체가 자국에서 소비하지 못한 철강제품을 싼값에 수출로 밀어내면서 초래된 후폭풍이다. 한국 철강업체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내 철강 수급은 2020년까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산 저가 공세…세계 철강업계 '감원위기'
◆글로벌 철강사 연이은 구조조정

11일(현지시간) 세계 19위 철강업체 티센크루프의 본사가 있는 독일 뒤스부르크에 철강 노동자 1만6000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타타스틸 사태를 보면서 독일 노동자들이 일자리 감소 공포를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세계 11위의 인도 타타스틸은 지난달 말 영국 철강산업 고용의 80%를 차지하는 영국 공장 매각 방침을 밝히며 논란을 일으켰다. 영국계 사모펀드 그레이불캐피털이 타타스틸의 일부 생산라인을 인수하며 4400여개 일자리를 지켰지만 나머지 1만여명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 7일엔 호주 철강업체 아리움이 법정관리를 선언했다. 세계 2위인 신일본제철은 올 2월 닛신제강 인수를 결정했다. 모두 중국산 철강 유입에 따른 구조조정이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 유입으로 유럽 내 철강 가격은 2012년 평균 t당 600유로대에서 현재 400유로 초반으로 30% 이상 폭락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철강협회는 지난해 중국의 철강 생산량이 8억300만t으로 세계 전체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세계 2~7위인 일본과 미국 인도 한국 러시아 독일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문제는 9%대 경제성장률과 건설붐이 일 때만 해도 중국에서 대부분 소비됐지만 지금은 중국 안에서도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13년부터 수출을 급격히 늘렸다. 지난해 수출은 역대 최고인 1억1200만t으로 일본의 전체 철강 생산량과 맞먹었다.

중국 내에서도 과잉 생산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크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의 러우톄쥔 부국장은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정부는 2020년까지 연간 철강생산 능력을 11억t으로 줄일 계획이지만 국내 소비가 7억t을 넘지 못할 것”이라며 “수급 균형을 맞추려면 추가로 2억t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전장 중국철강공업협회 사무총장도 “올 들어 철강 가격이 다소 반등하자 업계 생산량이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짝 실적 개선한 한국 철강업계

한국 철강업계는 최근 중국발 공급과잉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포스코는 2조41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이는 2014년(3조2135억원)보다 25% 줄어든 규모다. 매출도 전년 대비 10%가량 감소했다. 현대제철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각각 전년 대비 4%와 2% 줄었다. 동국제강은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하고 있고, 동부제철은 상장폐지설이 나온다.

올해 분위기는 지난해보다 나아졌다. 중국 정부의 철강업계 구조조정으로 공급사가 줄어든 상황에서 철광석 가격이 오른 결과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은 올 들어 계속해서 철강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철강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한 것은 약 3년 만이다.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사의 1분기 실적도 기대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철강업체가 생산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 공급과잉 현상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소재생활친화산업팀장은 “중국 업체가 제조원가보다 훨씬 낮은 제품을 수출하면서 세계 철강업계가 어려움에 빠진 것”이라며 “최근 철강제품 가격이 다소 올랐지만 세계적인 공급과잉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 팀장은 “대표적인 철강제품 소비 국가이던 중국이 수요를 줄이는 등 원가 하락 요인은 남아 있다”며 “사업 및 설비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영국이나 미국처럼 철강산업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뺏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근호/도병욱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