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전화만 하루 10통…공무원들 "일 못하겠다"
기획재정부 A과장은 사무실 전화벨이 울리면 한숨부터 쉰다. 수화기로 전해지는 직속 상관의 호통 때문이 아니다. 한 민원인이 A과장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어 “주식시장이 안 좋은 게 기재부 때문”이라는 주장을 보름 넘게 반복하고 있어서다. ‘국민을 무시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 친절하게 응대하고 있지만 10분 이상 이어지는 통화를 끊고 나면 진이 빠진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사무실 직통 번호로 쏟아지는 민원 전화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세제실과 예산실이야 업무 특성 때문에 민원 전화가 다반사이지만 최근엔 기획·정책 파트나 국제금융 담당 부서에도 민원인 전화가 수시로 오고 있다.

하루에 10통 이상의 민원 전화를 받고 있는 국제금융국 소속 B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의 환율 정책이나 외환거래제도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토론을 원하는 민원인은 그래도 양반이다. 대뜸 욕부터 하는 민원인 전화를 받고 나면 하루 종일 일할 기분이 안 난다. B과장은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민원을 쏟아내는 전화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며 “욕설이 섞인 전화를 받아도 ‘전화 응대 친절도’가 부서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담배 한 개비 피우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민원인들은 기재부 홈페이지의 ‘민원서비스’ 메뉴를 통해 이메일 등으로 공무원에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민원 전화가 쏟아지는 것은 기재부 직원들의 전화번호까지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C과장은 “미국 재무부나 일본 재무성은 홈페이지에 직원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국민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업무를 집중해서 처리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