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저성장 기조로 인한 제조업 위기 속에서 중국 가전기업 하이얼의 사업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하이얼 사업 방식의 특징은 ‘유연성’에 있다. 거대 제조기업으로서 앞으로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체질 구축을 지향하는 것이다.

하이얼은 벤처 인큐베이터와 같은 조직 운영을 통해 내부 창의성을 높이고, 상품 기획의 스피드와 유연성을 극대화한다. 하이얼이 2005년 도입한 ‘ZZJYT(Zi zhu jing ying ti·자율경영) 시스템’에서는 누구든지 사업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경영자에 준하는 역할과 권한을 부여받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경영진을 대상으로 사업 발표를 하고, 아이디어가 타당한 것으로 평가되면, 다양한 부서 직원을 대상으로 10~20명 규모의 ZZJYT 그룹을 직접 구성한 뒤 회사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배정받는다. 이들은 사업 성과에도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급여조차도 사업 성과에 연동한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별도 회사 분할도 가능하다. 이후에는 하이얼과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유지한다.

회사 내 각 부서는 철저한 시장 원리에 의해 협업한다. 물류, 구매, 생산, 영업 부서들은 시장 가격에 근거한 ‘내부 가격’에 따라 각 ZZJYT와 거래 계약을 맺는다. 가령 생산 부서는 일정 수준의 품질, 수율, 납기를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ZZJYT와 납품 계약을 체결한다. 만약 내부 생산 부서의 품질, 수율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ZZJYT는 적극적으로 외주 생산을 활용하도록 권유받는다. 모든 협업 활동이 가격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어떤 부서든지 최종적으로는 재무 성과를 통해 평가받게 된다. 회사 안에 또 하나의 자유 경쟁 시장이 존재하는 모습이다.

또한 하이얼은 일반적인 제조업 사업 모델을 넘어서기 위해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 고객과 상시적으로 소통하면서, 제품의 가치를 높여 나가기 위함이다. 하이얼의 사내 슬로건 중 하나가 ‘정보가 제품보다 중요하다(The Information is more valuable than the product)’일 정도다.

예컨대 고객이 하이얼의 스마트 가전을 구매하면 설치 기사가 제품을 고객 집에 설치하면서 필수적으로 제품을 네트워크에 연결해준다. 이후 해당 가전에서 나오는 시그널을 모니터링하다가, 이상이 감지되면 고객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상담하는 방식으로 고객의 제품 사용 행태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들을 얻는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정보들은 하이얼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카사르테(Casarte)의 상품 기획에 활용된다.

[BIZ Insight] 거대 공장을 벤처 인큐베이터처럼…하이얼의 조직 혁신
한국 제조업 역시 위기 극복을 위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중국과 같은 신흥국 제조기업들이 대부분의 산업에서 한국과 기술 격차를 줄여가는 상황에서는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어떻게 사업하고,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와 같은 사업 방식의 혁신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하이얼의 사업 방식은 제조업의 변화 방향에 대한 하나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기업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신재욱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jwshin@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