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장중 110.3엔까지 추락…아베노믹스 약발 다했나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이 장중 110.30엔까지 추락하면서 일본 엔화의 가치가 1년 6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엔화약세를 약속하면서 '아베노믹스'라는 이름하에 2014년 10월 이후 대대적으로 확대했던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가 모두 사라진 셈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엔화 가치 급등은 세계 경제 침체 심화나 금융 불안 확대의 전조가 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엔화가치 18개월 만에 최고…주가 급락하고 경제지표 악화

5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오후 4시 50분 현재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18개월 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110.48엔까지 떨어졌다.

장중에는 달러당 110.30엔까지 떨어져 엔화 가치는 2014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엔화는 2014년 10월 31일 달러당 110엔 아래로 떨어졌다가 이후에는 계속 110엔 선을 웃돌았다.

엔화 가치는 올해 들어 8.7% 상승(엔화환율 하락)해 주요 10개국(G10) 통화 중 최고 강세를 보였다.

엔화가치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일본 닛케이지수는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올해 1분기 12% 떨어져 주요20개국(G20) 중 중국(-15.4%) 다음으로 수익률이 나빴으며, 이달 들어 엔화 강세가 재차 가속화되자 사흘간 6% 넘게 떨어지면서 15,000선대로 주저앉았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경기에 개선 신호가 나타나고 있음에도 일본 기업이 느끼는 경기상황은 크게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행이 1일 발표한 1분기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短觀·단칸)에 따르면 기업이 느끼는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단칸지수(DI)의 대표 지표인 대기업 제조업 업황판단지수는 작년 4분기에 비해 반토막이 난 6이었다.

지수는 4를 기록했던 2013년 2분기 이후 거의 3년 만에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연구위원은 "엔고는 일본 경제 부진의 징후인데 일본은행이 추가 완화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기 때문에 아베노믹스에 대한 한계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엔화 강세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달러 약세에 따른 반작용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엔화가치의 가파른 상승은 한국 수출의 경쟁력을 올려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전통적으로 급격한 엔고는 좋지 않은 신호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 침체의 심화, 금융불안 증폭의 전조가 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엔저'와 함께 움직인 아베노믹스 3년반…성장동력 잃나

일본의 경제 재생을 부르짖으며 집권한 아베 정권의 핵심 경제 정책은 엔화 약세였다.

아베 총리 취임일인 2012년 12월 26일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달러당 85.36엔(종가 기준)이었지만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이 수준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엔화 환율은 '아베노믹스'의 주요 변곡점마다 가파른 속도로 올랐다.

2013년 4월 일본 정부는 2년간 시중의 통화량을 2배로 늘리는 내용의 대규모 양적·질적 완화 정책을 내놓고 장기국채 매입규모도 총 190조엔으로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 기세에 엔화 환율은 정책 발표 일주일 만에 달러당 93엔에서 99엔으로 급등했으며, 같은해 5월 10일에는 달러당 100엔을 돌파하면서 글로벌 외환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엔화 가치가 한 차례 더 폭락(엔화 환율 폭등)한 것은 일본 정부가 2014년 10월 양적완화 규모를 현행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제시하면서다.

이 영향으로 10월 30일 엔화 환율은 달러당 110엔을 돌파했다.

지난해 6월 5일에는 아베노믹스 도입 2년 반 만에 달러당 125엔의 고지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올해 1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깜짝 도입했음에도 엔화 강세 현상은 꺾이지 않았다.

제이슨 웡 뉴질랜드 은행 외환투자전략가는 "일본은행은 추가 양적완화에도 엔화 가치를 약세로 관리하는데 꽤 비효율적이었다"면서 "일본은행이 엔화 가치 조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김경윤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