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민은 신민이 아니다
지난달 세무서로부터 한 장의 과세예고통지서를 받았다. 2014년에 기타소득 하나가 종합소득 합산에 누락돼 그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살펴보니 다름 아니라 연금저축을 해지한 금액이었다.

한 금융회사에 연금저축을 가입한 뒤 불입기간 만료 때까지 불입하고 몇 년 지난 후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서 2014년 연금저축을 해지했다. 해지할 때 받은 금액은 그동안 불입한 연금에도 못 미쳤다. 그 이유는 연금저축이 세금공제 상품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공제받은 금액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금융회사에서 부과한 세금은 기타소득세였다. 그것이 어떻게 기타소득이냐고 물었더니 세법에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연금저축을 해지할 경우 그에 대한 정확한 세금은 매년 공제받은 금액에 대해서 계산해야만 옳다. 그렇지만 세금을 원천징수해야 하는 금융회사 입장에서 그 세금을 계산하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일괄적으로 기타소득세를 적용해 부과한 것은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세금을 낸 연금저축의 해지금액을 다시 기타소득으로 잡아 종합소득에 합산해 또다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근로소득 중에서 일부를 떼어 매달 꼬박꼬박 불입했다가 필요해서 찾았는데 그것이 어떻게 기타소득이 되느냐”고 세무서에 문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세법이 그렇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기타소득이란 무엇인가. 기타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이자소득, 양도소득 외의 소득으로 한마디로 일시적·우발적으로 발생한 소득을 말한다. 그런데 근로소득 중에서 일부를 저축했던 연금저축의 해지금이 어떻게 기타소득이 되나. 그리고 세금공제한 부분에 대해서는 해지 시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지 않았나. 그런데 그것을 기타소득으로 잡아 종합소득에 합산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김없는 이중과세다. 이런 잘못을 인지했는지, 세무서 담당자 말로는 세법을 개정해 2015년 1월1일부터 연금저축 해지금을 종합소득에 합산해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지 않기로 했단다. 그런데 소급적용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법을 개정했다는 것은 정부가 그동안 잘못해왔음을 인정한 것이다. 세법 개정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소급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은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동안 연금저축 해지금을 종합소득에 합산해 세금을 부과한 것은 세금을 잘못 걷어 국민의 재산을 훼손한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 걷은 세금은 소급 적용해 당사자에게 되돌려 줘야 마땅하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의 재산을 훼손하는 것은 국가권력 남용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상하게도 국가가 정한 법이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가벼이 여기고 국민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법들이 많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기업소득환류세제도 그런 종류다. 기업이 이윤을 임금, 배당, 투자 등에 사용하는 것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할 문제이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지시대로 하지 않는다고 법인세를 추가 징수하겠다는 것은 재산권 침해다.

국가가 그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재원이 필요하다. 그 필요한 재원을 위해 정부가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며 국민은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국가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국민은 정부가 정하면 무조건 해야 하는 신민(臣民)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이다. 잘못을 시정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국민의 재산을 침해한 일과 같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