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 농업분야 최초 대기업 진입…한국판 '카길' 꿈꾼다
곡물 유통, 사료, 축산, 식탁에 오르는 육가공식품까지 아우르는 하림그룹이 농업기업으로는 최초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병아리 10마리로 사업을 시작해 자산총액 10조원의 거대기업을 일군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60·사진)의 기업가 정신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팬오션 인수로 곡물 유통 등 7개 사업 화장…한국판 '카길'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국내 65곳의 대기업 집단 중 농업분야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은 하림이 유일하다. 하림은 지난해 팬오션(옛 STX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자산 규모가 4조7000억원에서 9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을 경우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된다.

하림이 팬오션 인수에 관심을 가졌을 때만 해도 '하림이 엉뚱한 분야에 손을 대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불거져 나왔다. 법정관리에 놓여 있던 벌크전문 선사인 팬오션을 인수해 하림에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김 회장은 구조적으로 수입 곡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현실에서 곡물의 안정적 조달이 농업 분야의 숙원이라고 그동안 판단해왔다. 곡물의 안정적 공급 없이 장기적인 곡물 사업 계획을 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 해상운송의 기반을 확보하는 데에 큰 관심이 있었다.

이미 하림의 전체 매출(4조8000억원) 중 사료부문(1조4000억원)은 닭고기부문(1조1000억원)을 넘어섰다. 팬오션은 한때 2500만t의 곡물을 수송해 곡물 메이저회사들을 제외하곤 상업적 곡물 수송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회사다.

하림은 팬오션 인수 후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약 45만톤의 곡물조달 계약을 체결하는 등 이른바 'ABC(ADM, Bunge, Cagil 등 글로벌 곡물 회사들의 약칭)'와 일본 상사그룹들이 각축하는 국제 곡물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김 회장은 "곡물 자급률이 24~45%에 불과한 우리나라 같은 경우 안정적으로 곡물 수급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식품시장에서도 큰 사업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판단이 팬오션 인수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팬오션 인수를 통해 하림그룹은 크게 곡물유통·해운·사료·축산·도축가공·식품가공·유통판매 등 7개 영역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팬오션은 2018년까지 340만t의 곡물을 유통해 국내 사료용 곡물 시장을 석권하고, 2020년에는 아·태지역 메이저 회사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선대 유산 없이 당대에서 이룬 '자수성가 대기업'

하림은 창업주인 김 회장이 선대의 가업을 물려받거나 사업적 토대를 제공받지 않고 개인사업자로 시작해 중소기업, 중견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를 밟아 창업 당대에 대기업군 진입을 이뤘다.

하림은 김 회장이 열한 살 때 외할머니로부터 선물받은 병아리 10마리에서 시작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골 소년이 좋아했던 병아리 키우기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닭고기기업으로 성장했고 모든 식품의 원소재인 곡물유통에 분야로 까지 확대되며 글로벌 종합식품 대기업으로 발돋움한 셈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김 회장은 고교시절부터 사업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1986년 사육과 도계 가공 및 판매를 연결하는 초기단계의 닭고기 계열화(Integration) 사업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 창업 30년 만에 하림을 대기업 반열에 올렸다.

하림의 대기업 집단 지정은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는 농업(축산)분야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올해 지정된 국내 65곳 대기업집단 중 하림과 같이 1차 산업인 농업에서 출발해 종합식품 분야로 특화 성장한 기업은 없다.

현재 하림은 국내에 58개의 법인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총 자산 10조원, 연간 총 매출액 6조3000억원, 종사자수 1만4000여명에 이른다. 닭고기 부문, 브랜드 돈육부문, 사료부문, 건화물운송 부문 등에서 민간분야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에 의한 대기업집단 지정은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계열사 간 상호출자, 신규순환 출자 및 채무보증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 금융, 세제, 사업영역 등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고 기업집단 현황 공시 등의 의무도 커진다.

하림 관계자는 "팬오션이 계열사로 편입되지 않았어도 올해부터 자산 5조원 클럽으로 진입하는 것이 예상됐던 상태"라며 "법규의 준수는 기업활동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법의 테두리안에서 경쟁력을 키워가는 방안들을 찾아 실행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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