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진 옛 명성그룹의 김철호(78) 회장이 가족기업을 앞세워 매물로 나온 산은캐피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 측은 지난달 24일 산업은행이 추진하는 산은캐피탈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에 '태양의 도시'라는 법인명으로 참여해 입찰적격자로 선정됐다.

태양의 도시는 2006년에 설립된 자본금 2억원의 관광·숙박시설 운영업체로 김 회장의 아들인 경국 씨가 대표이사를 맡는 등 사실상 가족기업으로 알려졌다.

콘도미니엄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정착시킨 김 회장은 한때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을 일궜던 인물이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8월 대검 중앙수사본부가 그를 탈세 및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하면서 명성그룹은 순식간에 공중분해됐다.

김 회장은 17년2개월형을 선고받은 뒤 9년7개월을 복역하고 1995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가 세운 명성콘도는 1986년 한화그룹에 넘어가 지금의 한화리조트로 재탄생했다.

김 회장은 옥고를 치른 뒤 태백 탄광지대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등 끊임없이 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번 산은캐피탈 매각 예비입찰에선 태양의 도시 외에 SK증권 주도의 프라이빗에쿼티(PE)와 사모투자펀드(PEF) 칼라일(Carlyle)이 입찰적격자(숏리스트)로 선정됐다.

산은캐피탈은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 7천억원에 자산규모 5조200억원인 2금융권 캐피탈사로, 취약업종이나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모회사인 산업은행이 보유한 장부가 5천973억원 규모의 지분 99.92%(6천212만4천661주) 전량을 이번에 매각한다.

매각가격은 6천억∼7천억원대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작년에 금융자회사 매각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을 미래에셋그룹에 넘기고 산은캐피탈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산은캐피탈 매각은 작년에도 추진됐으나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돼 이번에 다시 추진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숏리스트를 대상으로 예비실사를 진행토록 한 뒤 이르면 5월에 산은캐피탈 매각을 위한 본실사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산은캐피탈 노동조합은 사모펀드에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에 대해 "벤처기업 육성 지원 기능을 잃거나 자산 매각 등으로 회사가 분해될 최악의 상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노조 측은 이와 관련해 6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한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기자 indig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