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독립대리점 상품추천 중립성 상실
협회 반대에 제도개선 '발목'…임차지원 금지조항 빠져

직장인 김모(40)씨는 최근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그는 한 독립보험대리점(GA·이하 독립대리점) 소속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근황을 전하면서 평소 연금보험 가입을 고민하던 김씨에게 최근 인기를 끈다는 한 생명보험사의 변액연금보험 상품을 소개했다.

독립대리점이 여러 회사 상품을 함께 취급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김씨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좋은 상품을 추천해줬을 것이라 믿고 상담 일정을 잡았다.

그러던 중 "독립대리점이라고 꼭 소비자에게 유리한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금융권 지인의 충고를 듣고 상품정보를 다시 꼼꼼히 살피게 됐다.

4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보험사들이 설계사 100명 이상인 독립대리점 188곳에 지원한 임차보증금 규모가 총 3천6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독립대리점이란 특정 회사의 보험 상품만 파는 전속 대리점과 달리 여러 회사의 금융·보험 상품을 동시에 판매하는 회사다.

동종의 다양한 보험 상품을 다루다 보니 소비자에게 가장 적합하고 유리한 상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립대리점들이 사무실 임차보증금이나 월 임차료를 많이 지원해준 생명보험사의 상품 위주로 몰아주기식 판매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대형 A생보사의 경우 지난 1월 독립대리점 판매채널에서 매출을 올린 전체 수입보험료 가운데 70%가 2개 독립대리점에서 거둔 실적이었다.

다른 대형 B생보사의 경우도 2개 독립대리점에서 전체 독립대리점 수입보험료의 65% 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나 쏠림 현상이 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독립대리점에 임차료를 지원해 주는 대신 일정 수준의 실적 목표를 주문한다"며 "독립대리점으로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임차료 지원이 많은 보험사의 상품 위주로 판매를 권유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금융상품을 추천하며 고객의 재무설계를 돕는다는 독립대리점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인 셈이다.

나아가 보험사들이 대리점에 지원한 임차료는 보험사의 사업비에 포함되므로 결국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도 도입 초기 일부 생보사들이 영세 독립대리점에 사무실 임차보증금을 빌려주던 게 이제는 업계 관행으로 자리잡았다"며 "한 보험사에서 임차료를 지원하면 다른 경쟁 보험사 입장에서도 임차료를 지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생명보험사와 독립대리점의 밀월 관계를 끊고자 임차료 지원 금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보험 분야의 금융개혁(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 과제를 대거 반영한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을 변경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사무실 임차료, 대리점 운영 경비, 회식비 지원을 보험사에 요청하는 것과 같은 독립대리점의 불공정·부당 행위를 규율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대리점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 제도 개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실제 변경 예고 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 1일부터 시행된 개정 감독규정에는 독립대리점 규율 부문만 쏙 빠졌다.

보험대리점협회가 임차료 지원 금지 방안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규제개혁위원회가 개정안 중 이 부분만을 중요규제로 분류해 별도 심사를 벌이기로 한 까닭이다.

규개위가 4∼5월 중 해당 규제를 심사할 예정이지만 원안 통과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임차료 지원을 금지하면 보험사 의존도가 높은 독립대리점은 경영난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고객의 신뢰를 얻으면서 보험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하려면 임차료 지원과 같은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