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토 쇄신 기대" vs "믿을 수 없다…가시밭길"

대만 훙하이(鴻海)정밀공업 산하 폭스콘이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 샤프를 인수한 것으로 놓고 31일 일본 언론 사이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외국기업의 역동성이 폐쇄적인 일본기업 풍토를 쇄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한편으로 협상과정에서 인수가액을 후려친 훙하이에 대한 반감도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날 "지난 1개월 동안 교섭의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궈타이밍(郭台銘) 훙하이 회장의 발언에 샤프 측이 휘둘리는 장면이 자주 있었다"면서도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불안한 목소리가 있기도 하지만, 기업 풍토를 쇄신해 오랜 정체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말 경영 위기에 빠졌던 닛산자동차가 프랑스 르노의 출자 이후 파벌을 비롯한 모든 악폐를 청산하고 기사회생한 사례를 거론하며 "외국자본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평했다.

실제로 전기전자는 20년 전만 해도 자동차와 함께 일본의 2대 기간산업이었지만 지금은 명암이 완전히 갈렸다.

세계 점유율 수위를 달리는 일본차에 비하면 일본 전기전자공업의 작년 국내총생산액은 12조4천억엔(약 126조원)으로 정점이던 15년 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대형 히트상품도 없다.

심지어 일본 전기전자제품은 그간 국내시장 밖에서는 제대로 통용되지 않으면서 '갈라파고스'처럼 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런 흐름에서 이번 인수는 일본 전기전자산업 재편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샤프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면 한국은 물론 세계 전자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부진한 일본 전기전자업계 전체의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기술 면에서는 액정을 대신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유기EL이 열쇠를 쥘 것으로 전망됐다.

이 분야에서는 한국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샤프와 훙하이의 반격에 신문은 기대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훙하이라는 이질적인 플레이어의 힘으로 샤프가 재생할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의 막이 열린 것이다"고 강조했다.

다만 훙하이의 샤프 재생방안이 조금 안이하다고도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부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요미우리 신문은 훙하이가 인수금액을 1천억엔(약 1조180억원) 낮추거나 채권은행단에 추가융자를 요구한 과정을 소개하면서 "샤프 인수 조건 협상은 시종일관 훙하이 페이스로 진행됐다"면서 "샤프 내에서는 불신이 재연되고 있어 일본-대만 연합군의 출항에 대한 불안감을 남긴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훙하이의 행태가 점령군 같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2월 26일 훙하이는 100명이 넘는 스탭을 일본에 파견, 샤프의 재무리스크를 정밀실사한다고 했으나 "계약을 맺기 전에는 할 수가 없는 수많은 주문을 했다.

중국측 스마트폰 거래처와 관계를 끊고, 훙하이하고만 하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요미우리는 소개했다.

신문은 "30일 나온 인수계획에는 태양광패널사업을 장래에 털어낸다는 방침이나 기술 유출을 막을 조치도 일부에 한정하는 문장도 포함됐다.

이는 '사업을 정리하지 않는다', '기술유출은 안한다'는 훙하이의 기존 방침을 뒤집은 것'이라며 "샤프나 은행단 사이에 '훙하이는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훙하이가 바라는 것은 샤프의 액정기술 뿐이다.

정말로 샤프를 재싱시킬 의지는 없는 것이 아닌가.

양 측간 불신감이 지난 한 달간 증폭돼 샤프의 재생에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쿄 신문도 "추가교섭에서 샤프가 크게 양보했다"면서 "당초 합의안에 없었던 '구조개혁', '사업재편' 등 구조조정을 시사하는 문구들이 첨가됐다"면서 "훙하이 산하에서 샤프 재건은 가시밭길"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tae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