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진입속도 너무 빨라…내년부턴 생산가능인구도 감소
전문가들, 소비·투자 토대 만들기 위한 구조개혁 강조

정책팀 = 올해 경제성장률이 3% 미만으로 떨어지면 최근 5년간 한국 경제 성장률은 2014년(3.3%)만 빼고 계속해서 2%대에 머물게 된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추세적이라는 해석이 힘을 받는 상황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저성장은 피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진입하는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갑작스럽게 버블(거품)이 꺼지면서 장기 불황에 돌입한 '일본형'보다는 경제 성장률이 서서히 낮아진 '유럽형'으로 연착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 수출 부진한데 생산·소비·투자도 '마이너스'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한 눈높이가 계속해서 낮아지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세계 무역이 위축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집계한 지난해 전 세계 무역 규모는 2014년에 비해 11.8%나 쪼그라들다.

저유가, 중국 경제 둔화 등으로 극심한 수출 부진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던 수출은 이달 1∼20일에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19.2% 줄었다.

이달 수출은 최장 기간인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세계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에는 3.6%로 봤지만, 올해 1월 3.4%로 하향조정했다.

IMF는 다음 달 회의에서 전망치를 추가로 낮출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3.3%에서 지난달 3.0%로 내렸다.

무엇보다도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 경기가 위축되는 것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세계경제가 3.2% 성장하고, 중국 경제는 6.6% 성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국 경제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그러나 IMF가 예상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3%로 낮아졌고 미국 경제의 회복세도 더뎌졌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1월 산업생산이 전월보다 1.2% 감소하고 소매판매는 1.4%, 설비투자는 6.0% 줄어드는 등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작년(3.1%) 수준에 머문다면 한국 경제성장률도 작년과 같은 2.6%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LG경제연구원 2.5%, 한국경제연구원 2.6%, 현대경제연구원 2.8% 등 민간연구기관들은 이미 2%대 성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 "경제주체들 준비 안 됐는데 저성장 빠르게 진행"

저성장은 경제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IT 붐이 끝나고 중국의 고성장이 꺾이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저성장 문제를 맞았다.

문제는 경제 주체들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경제성장률이 떨어지지만, 한국 경제의 하락 속도는 너무 빠르다"며 "내년부터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노동이 추가로 투입될 가능성마저 줄어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허재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 3%대 중후반이 아니라 3%대 초반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경제의 체질이 이미 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계는 부채가 많은데다 노후 준비가 미비하고, 기업들은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현금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과잉 문제마저 겪고 있다.

인구가 고령화되는 가운데 수출 제조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돼 투자가 줄어들고, 실질임금이 줄어든 가계는 소비를 줄이는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 민간소비·투자 토대 만드는 게 '관건'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면 '일본형'보다는 '유럽형' 저성장이 낫다고 보고 있다.

유럽형은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형태이고, 일본형은 1990년대 '버블 붕괴'처럼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으면서 성장률이 하락한 형태다.

유럽형 연착륙을 위해서는 구조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당장 올해 성장률이 떨어지더라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정책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는 소비가 잘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임금이 오르지 않고, 소비도 안 되는 형태가 지속되면 경제가 축소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선 추가경정예산이나 금리 인하 등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임금 상승분의 80% 이상이 소비로 흘러가기 때문에 정부가 임금 인상, 소득 분배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정희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기업들은 유보금이 많은데도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이 투자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할 때 고용 창출 효과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양규 실장은 "전 세계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도 최근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무척 부진하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조개혁, 규제 완화를 꾸준하고 과감하게 추진해 투자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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