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보국' 일념…롯데의 DNA로 이어져

[대한민국 신인맥(5)]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새롭게 한국 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껏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격호 총괄회장이 한 인사말이다. 신 총괄회장은 식민지 시대 일본 유학 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두 차례 폭격에도…‘껌’으로 열도 석권
[대한민국 신인맥(5)]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신 총괄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신문·우유 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시작했다. 와세다대를 다니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청년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했다.

도일 2년 만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신 총괄회장을 지켜본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사업을 제의하며 5만 엔을 선뜻 내준 것이다. 그 덕분에 그는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열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은 두 차례나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미쓰의 신뢰에도 변함이 없었다. 신 총괄회장은 1946년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 내면서 진정한 사업가로 거듭나게 된다. 생활용품이 워낙 부족한 시절이었던 만큼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사업 시작 1년 반 만에 하나미쓰의 돈을 모두 갚고 따로 집을 한 채 사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청년 사업가 신격호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패전국 일본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낯선 이방인이 씹던 껌은 어린이 등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다. 비누에 이어 화장품으로 재미를 보던 신 총괄회장은 껌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던 만큼 신 총괄회장은 금세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 사업체 롯데가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회사명에 얽힌 일화도 있다. 문학에 심취한 청년 신격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로테’에서 사명을 따왔다. 그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껌으로 승승장구하던 롯데는 이후 일본 내 초콜릿 시장을 제패하며 종합 제과 업체로 발돋움한다.

◆고국에 투자…현해탄 경영의 시작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총괄회장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기업보국(企業報國)의 신념 아래 가난에 허덕이는 조국 어린이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주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의 길이 열리면서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 모국 투자를 시작했다.

롯데는 1970년대 들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을 바탕으로 국내 최대 식품 기업으로 도약했다.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산업 현대화의 토대를 구축하기도 했다.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한국의 마천루’.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소공동 롯데호텔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가 투자됐다.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해외 체인을 오픈할 만큼 성장한 상태다.

신 총괄회장은 국가 경제 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백화점 사업에도 도전한다.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는 1979년 12월 건립 공사 착공 3년여 만에 완공됐다. 총면적 2만7438㎡, 영업 면적 1만9835㎡로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였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개점 이후 한국 1위 백화점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4년 신 총괄회장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다. 롯데 임직원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 시설을 짓는 게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롯데월드를 통해 볼거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수준으로 국내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 총괄회장의 소신은 적중했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산업 불모지인 모국에 기업을 일으켜 국가와 사회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신 총괄회장의 일념은 롯데의 DNA로 이어져 오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경영 철학은 정직과 봉사, 정열로 압축된다.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신 총괄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자주 강조하던 이 말은 롯데그룹의 경영 철학을 대변한다.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애정은 신 총괄회장에게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는 명칭을 선물했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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