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법인세율과 자본소득세율을 큰 폭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 자영업자와 영세기업들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비중을 대폭 늘렸다. 세금을 걷어서 국가가 인심 쓰며 나눠주는 것보다 세금을 가급적 덜 걷는 게 오히려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법인세 인하 경쟁] "법인세는 가장 왜곡되고 비생산적 세금"…세율 더 낮추는 영국
◆법인세율 10년 새 28%→17%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법인세율을 현재 20%에서 2020년 4월까지 17%로 떨어뜨리고, 자본소득세율을 28%에서 20%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올해 예산안을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원래 2020년까지 법인세율을 18%까지 내릴 예정이었는데, 인하폭을 1%포인트 더 키우기로 결정했다. 오즈번 장관은 “법인세는 가장 왜곡되고, 비생산적인 세금 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영국이 (세율 인하) 개척자로 나서서 다른 나라들이 뒤따라오게 하자”고 강조했다.

2010년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취임한 뒤 영국 정부는 28%였던 법인세율을 20%까지 단계적으로 낮췄다. 세율을 확 끌어내리는 바람에 법인세수는 줄었지만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늘어나고 신규 일자리가 증가했다. 세율 인하폭을 더 키우는 것은 이런 정책이 ‘통한다’는 확신에서다.

높은 세율을 유지하면 글로벌 세금 인하 경쟁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반영됐다. 세계 최저 수준 법인세율(12.5%)로 다국적 기업 해외 본사를 잇달아 유치하고 있는 이웃나라 아일랜드와의 격차를 줄이려는 취지도 반영됐다.

◆‘면세’ 자영업자 비중 늘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세금 감면 혜택 보따리도 풀었다. 영국에선 연간 6000파운드(약 1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면 사업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야 했는데, 앞으로는 1만5000파운드(약 2500만원)까지는 따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결정으로 약 63만개 사업체가 세금 부담을 덜게 될 것이라고 오즈번 장관은 추산했다.

영국 정부는 또 부가가치세를 정당하게 내지 않고 영국인에게 온라인으로 물건을 파는 해외 업체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자국 업체들이 세금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높은 소득세율(40%)을 적용받는 대상자를 줄이는 등 개인 대상 세금도 상당폭 깎기로 했다.

◆설탕세 등으로 세수확보

영국은 줄어드는 조세 수입을 다국적 기업 조세 회피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해서 메울 계획이다. 영국은 최근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을 압박해 과거에 내야 했던 세금 중 일부인 1억3000만파운드(약 2200억원)를 추가로 거둬들였다. 올해부터 주요 20개국(G20)들이 세원 잠식과 소득이전(BEPS) 방지에 관한 행동지침을 실행하기 때문에 해당 기업들에서 세금을 더 걷을 여지가 있다. 오즈번 장관은 약 90억파운드를 더 걷을 수 있다고 낙관했다.

또 다른 세수 확보 방안은 ‘설탕세’다. 오즈번 장관은 “5살 아이가 매년 자신의 체중에 해당하는 설탕을 먹고 있다”며 어린이 비만을 막기 위해 2년 내 설탕이 일정량 이상 들어간 음료수 등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연 5억2000만파운드를 더 거둘 예정이다. 무작위 법인세보다는 사회적으로 부정적 효과가 큰 분야를 콕 찍어서 세금을 왕창 매기는 정책이다. 영국은 설탕세를 걷어 방과후 학교 운영예산을 늘리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오즈번 장관은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졌다며 영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0%로, 내년 전망치를 2.5%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성장률이 낮아져 정부 부채를 해마다 줄이겠다는 약속은 올해 못 지키게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회계연도에는 흑자 재정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샘 보먼 애덤스미스인스티튜트 대표는 “오즈번 장관이 2019년 흑자재정 목표를 달성하려면 310억파운드만큼 추가로 지출을 줄이거나 세수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